흙은 생명의 근원
흙은 생명의 근원
  • 김은혜 수필가
  • 승인 2022.12.19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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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혜 수필가
김은혜 수필가

 

우리 밭 언저리에는 돼지감자(뚱딴지) 번식이 어찌나 강한지 밭을 야금야금 점령해 군락을 이룬다. 하여 밭을 더는 빼앗기지 않으려고 돼지감자를 필요로 하는 지인과 함께 갔다. 호미로 흙을 뒤집어 뿌리를 찾는데 뿌리가 너무나 작다. 이 작은 뿌리가 우리네 키를 능가한 식물과 꽃을 피웠다니. 그리고 생김새도 동화책에서 본 뿔 달린 도깨비방망이 비슷한 작은 못난이다. 싹과 꽃에 비해 수확이 적다. 생김새를 보아 돼지감자란 이름보다는 뚱딴지란 표현이 더 잘 어울리는 것 같아 뚱딴지라 불러야겠다. 호미로 흙을 파는데 겉은 딱딱해도 뚱딴지가 있는 가장자리 흙은 폭신하다.

이렇게 인심 좋은 흙이 포근히 싸고 있는데 몸집 좀 키우지 왜 이리 작고 못생겼니. 몸집이 작은 씨알을 주워 바구니에 담으며 자기를 찾아와 살겠다는 모든 생명을 고이 받아 가꾸어도 종은 바꾸지 않는 게 흙의 본분임을 깨닫게 한다. 흙은 씨앗이 찾아와 받아달라고 문을 두드리면 자기에게 옴을 환영하고 썩지 않게 품는다. 흙 품에 안긴 씨앗은 습도와 온도가 자신에게 맞으면 단단한 껍질 속에 있는 씨앗은 몸을 부풀려 발화한다. 촉을 틔우면 흙은 자리를 양보하느라 부풀어 오른다. 여인이 아기를 잉태하면 배가 부풀어 오르듯이.

흙은 무생물인 동시에 살아있는 생명체다. 예를 들면 굼벵이, 지렁이는 흙이 품어주어야 자란다. 이렇듯 생명이 있는 모든 식물은 흙이 품어주어야 생명이 존재한다. 어머니가 자식을 품어 키우듯 흙이 키운다. 오늘의 이 뚱딴지도 그러하다. 그러므로 흙은 생명의 근원인 셈이다.

이렇게 생명의 근원이 되는 과정은 인간이 버린 음식물이나 동물의 배설물, 인간의 시체, 열매의 껍질, 일 년을 화려하게 살고 떨어지는 낙엽, 그것들을 본연의 살로 만드는 과정은 해가 뜨고 별이 뜨는 동안 비가 오면 비도 품고, 바람이오면 바람도 품고, 눈이 오면 눈도 품고, 햇살이 오면 햇살도 품어야 비로소 생명을 탄생시키는 살아 숨 쉬는 흙이 된다. 본연의 냄새로, 살로 변화시키기까지의 과정은 물체에 따라 시간이 길고 짧은 것도 있을 게다.

나무도 성장하는 동안 옹이가 자리를 잡으면 그 옹이가 형성되는 순간은 키가 멈춘단다. 그리고 옹이가 만들어지는 동안은 나무가 아픔을 겪는다던데, 그렇다면 흙도 각종 오물을 자기 살로 변화시키는 동안은 아픔의 수난이 있을 게 분명하다. 이토록 아픔을 감내하며 자신의 살로 만들어 다른 생명을 성장시키는 과정은 아름다운 순환이라 표현해도 되려나.

앞만 보고 숨 고를 새 없이 살아온 나날들을 돌아보자. 누군가가 나의 삶을 보고 롤모델로 삼을 사람이 있으려나. 쉼을 얻고 싶어 하는 이에게 쉼터가 되어주었나 반문해보지만, 내가 중심이 되어 살아온 날들뿐 상대방을 위해 아름다운 순환은 없었던 것아 겸연적어 얼굴이 붉어진다.

약한 것 같으면서도 강하고, 천한 것 같으면서도 귀한 게 흙이다. 그럼에도 흙 그 자체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게 흙이다. 토기장이가 손으로 모양을 만들어 불에 달구어야 그릇이 되고, 맑고 고운 소리를 내는 오카리나 역시도 그러하다.

흙과 더불어 살아간다는 자연인들의 한결같은 말, 병든몸으로 들어와 흙과 더불어 살았더니 건강해졌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흙이 없으면 인간도, 동물도, 식물도 존재할 수 없다. 그러므로 흙은 생명의 근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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