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받는 것이 아니라면서
사랑은 받는 것이 아니라면서
  • 충청타임즈
  • 승인 2007.09.10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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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나 재 훈<청주지방법원 사무관>

도시에서 태어나고 도시에서 자란 큰아이가 흙이 더럽다고 신발에 묻은 흙을 화장지로 닦아낸다. 깔끔도 병이라고, 흙조차 불결의 대상으로 여기는 아이가 우리 부부는 내심 걱정이 되었다. 그러던 중 전근의 기회가 있어 우리 가족은 '초록의 동산' 보은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관사 문을 들어서는 순간 약지 손가락 정도의 메뚜기가 잔디밭 사이사이에서 튀어 오른다. "야 ! 산 메뚜기다." 자연관찰 책에서만 보았던 아이들에게 살아 있는 자연은 그야말로 무궁무진한 호기심의 대상이었다. 앞마당 큰 나뭇잎에 주렁주렁 달려 있는 매미의 '변태' 껍질들, 아내도 오랜만에 보았다는 흙속의 '땅 강아지', 여름날 열대야의 밤을 이기기 위해 찾았던 속리산국립공원에서 본 '장수풍뎅이' 등, 책속에 나오는 곤충의 세계를 무궁무진하게 관찰할 수 있었다. 4살짜리 작은아이도 앞마당에서 사람에게 밟혀 상처가 난 지렁이에게 열심히 물휴지를 가져다 덮어 준다. 지렁이를 치료중이라고 한다.

그러던 중 큰아이 학교에서 운동회가 열렸다. 이곳은 '인라인스케이트 시범학교'였기에 학교에 있는 인라인 경기장에서 운동회를 맞아 인라인 연습을 했었다. 마침 바쁜 일이 있어서 운동회에 가지 못한 나는 저녁이 되어 아내에게서 운동회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어려서부터 운동을 좋아하는 큰아이가 5명이 뛰는 인라인 경기에서 4등을 했다는 이야기였다. 분명 평소 실력대로라면 1, 2등을 했을 아이가 뒤를 돌아보며 경기를 했다기에 아내가 경기가 끝나고 아이에게 이유를 물었다고 한다. 그랬더니 작은 비밀이야기가 나왔다.

"엄마 내 친구 영주 알지 영주가 얼마 전에 대전서 이사 왔는데 운동회 때문에 인라인을 배워야 했어. 그런데 영주는 몸이 약해서 나랑 2주일 넘게 연습했는 데도 인라인 타기를 힘들어해. 영주가 꼴찌로 들어오면 창피할거 아냐. 손은 잡아줄 수 없고, 그래서 영주 앞에서 살살 인라인 타면서 넘어지지 않나 보면서 들어왔어. 엄마 마음 몰라줘서 미안해. 난 그래도 상보다 친구가 중요하단 말이야." 아이의 따뜻한 말 한마디에 아내는 많이 부끄러웠다고 한다. 세상의 많은 부모님들은 자신의 자녀가 사랑받는 아이로 자라길 간절히 바란다. 하지만 남을 사랑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데는 익숙지 못한 듯하다. 참다운 행복은 사랑받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베푸는 데서 오는 데도 말이다. 내가 먼저 남을 사랑할 줄 알아야 남의 사랑도 받을 수 있으니까.

벌써 아침, 저녁으로는 선선하고 상쾌하다.

이러한 날씨에 어울리는 '사랑은 받는 것이 아니라면서'라는 노랫말이 귓속에 들리는 듯하다. '당신은 내게 들려주었지. 진정한 사랑을 하고 싶다면 오로지 주려고만 하랬지. 사랑은 받는 것이 아니라면서, 사랑은 받는 것이 아니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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