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춘수 좌대와 삼일공원
정춘수 좌대와 삼일공원
  • 충청타임즈
  • 승인 2007.09.10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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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김 승 환 <충북대학교 교수>

일전에 단양쪽으로 가다가 비석 하나를 발견했다. 정확히 말하면 시비(詩碑)였다. 오석으로 제법 크게 잘 만들어진 이 비석에는, 시인이라고 하는 어떤 사람의 글이 음각되어 있었다. 읽어 본 나는 기가 막혔다. 그런 정도의 시라면 고등학교 문예반 학생이 얼마든지 창작할 수 있는, 시라고도 할 수 없는 그저 한국어 글자에 불과한 수준이었다. 그런 시비를 도로변 공공장소에 표시나게 세워둔 것이다. 이것까지도 좋다. 자신의 이름을 새겨둔 것에 이르러 한탄이 나왔다. 빛나는 오석이 저렇게 천대받아도 되는가

아무나 시인을 자처하는 것은 좋지만 공공장소에 자기 자신을 남기겠다는 욕심은 문학과 돌을 능멸(凌蔑)하는 것이며 공공성을 해치는 행위다. 아마 그 사람은 별 감동이 없는 단순한 글자들로 인하여 만대에 걸쳐서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원래 비석이나 동상은 그 사람이 죽은 후에 세우는 것이 원칙이다. 생전에 비석이나 동상을 세우는 것은 여러 가지 문제도 발생하고 또 부정의 소지가 생긴다. 그런데 최근에는 생전에 시비도 세우고, 자신의 치적비도 세우며, 예술성 없는 조형물을 설치하는 무분별한 행위들이 너무나 많다. 표현의 자유는 존중되어야 한다. 하지만 금석문이나 조형물은 신중에 신중을 거듭하면서 설치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지난 몇 주 동안 동상을 둘러싼 문제가 논란이었다. 33인 중의 하나인 동시에 매국노인 정춘수 동상의 좌대에 그의 행적을 기록한 비석을 세우자는 논의였다. 일견 이해가 되었지만 염려가 앞섰다. 11년 전으로 이야기는 돌아간다. 1996년 2월, 정춘수 동상 철거라는 작지 않은 사건이 있었다. 당시 역사정의를 실현시키겠다는 충북 시민민중단체의 제안에 따라서 충북도청과 청주시청은 친일매국행위가 분명하다는 판단 하에 정춘수의 동상을 1995년 8월까지 철거하기로 결정했었다. 하지만 두 자치단체는 서로 책임을 전가하면서 철거를 하지 못했다. 갑갑한 상황이 몇 달간 계속되자, 참다못한 열혈 운동가들에 의하여 그 동상은 1996년 2월 8일 태극기를 목에 걸고 철거당했던 것이다. 그 이후에도 정춘수를 복권시키자거나 간단한 기념물을 세우겠다는 시도가 있었다. 이처럼 정춘수는 한국기독교계도 그렇고, 민족해방운동사에서도 그러하며, 충북의 시민들에게도 무척이나 고통을 선사하는 문제적인 인물이다.

이 일로 인하여 충북의 시민민중단체는 전국적인 뉴스가 되면서 '천하의 불한당', '범법자'라는 오명을 쓰고 수년간 고생을 했다. 당시 전국과 지역의 언론들은 이렇게 썼다. "완력과 목소리가 큰 개인이나 사회단체가 매사를 지배하는 것은 폭력이나 다름없다", "이 모든 것이 법치국가에서 있을 법한 일인가를 되묻고 싶다", "동상이 무너지는 장면은 그대로 법이 무너져 내리는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며, 성숙된 민주 시민의식의 실종을 그대로 보여준 것이다." 동상 철거의 전후를 보도하기는 했지만, 시민민중단체에 대한 적대적이고 일방적인 비난이 주류였다. 이 일로 인하여 충북의 시민민중단체는 범죄자 집단으로 매도당하고 공공기물을 파괴했다는 이유로 수년간의 조사와 재판으로 고초를 겪었다.

일단 정춘수 동상 문제는 신중해야 하며, 공공적 합의를 거쳐야 한다. 특히 삼일공원에 정춘수의 공과를 기록하는 것은 좋지만, 동시에 민족해방운동사의 본류인 민중들도 함께 추모되었어야 한다. 당연히 정춘수와 같은 민족대표 33인과 더불어서 청주, 괴산, 충주, 제천, 영동 등 충북 민중들의 민족해방에 대한 열망이 담겨야 한다. 물론 정춘수 좌대를 그대로 방치하지 말고 공과(功過)를 정확하게 기록하여 역사교육의 장소로 삼자는 제안도 일리가 있다. 하지만 정춘수 좌대 문제는 정춘수 개인의 관점에서 이해해서는 안 되며 차제에 '삼일공원'을 역사적으로 재구성을 하여 민족해방운동의 정신과 과정을 잘 담아내는 공원으로 다시 설계되어야 할 것이다. 만약 정춘수 개인의 문제로 이것을 접근하게 되면 또 다시 논란에 휩싸일 것이 자명하다. 다시 세운 정춘수 비석이 또 철거되는 오욕을 되풀이하지 않으려거든, 근본부터 바로세우고 민주적인 논의를 거쳐서, 총체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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