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린애도 아니고”라고요?
“내가 어린애도 아니고”라고요?
  • 심진규 진천 상신초 교사(동화작가)
  • 승인 2022.12.18 16: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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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심진규 진천 상신초 교사(동화작가)
심진규 진천 상신초 교사(동화작가)

 

어른들이 흔히 쓰는 말 중에 “내가 어린애도 아니고”라는 말이 있습니다.

뭔가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고 느낄 때 혹은 무시당한다고 느낄 때 흔히 쓰지요. 나는 어른이고 이 정도는 알고 있으며 이런 대우를 받을 사람이 아니라고 항변하듯 이야기하기 위해 쓰는 말입니다.

저는 이 말이 불편합니다. 어른들이 이런 말을 사용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이 말이 불편한 것은 제가 어린이들과 지내기 때문만은 아닐 것입니다. 이 말에 숨을 뜻을 살펴볼까요?

`내가 어린애도 아니고'라는 말에는 `어린애'에겐 그렇게 해도 된다는 뜻이 숨어있습니다. 어린아이는 무시해도 되고, 아직 뭘 잘 모르니 속여 넘겨도 되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아무리 나이가 어린 사람이라고 해도 하나의 인격체입니다. 나이가 인격을 재는 수단이 되면 곤란합니다.

김기전, 방정환 선생님을 주축으로 한 소년운동협회에서 1923년 `어린이 해방선언'을 발표합니다. 어른에게 드리는 글에 총 9개 조항이 있는데 이 중에 두 조항만 소개할게요.

△어린이를 내려다보지 마시고 치어다 보아주시오.

△어린이에게 경어를 쓰시되 늘 보드럽게 하여 주시오.

다른 많은 내용도 있지만 저는 이 두 조항이 핵심이라고 생각해요. 어린이를 바라보는 자세와 말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어른은 어린이보다 키가 큽니다. 자연스레 어린이를 내려다보게 됩니다.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려면 눈높이를 맞추는 것이 중요해요.

그렇다면 어린이와 이야기 나눌 때 어른이 자세를 낮게 해서 어린이를 약간이라도 올려다보면 어떨까요?

어린이에게 하는 말도 존중을 담으면 좋겠어요. 나이가 어리다고 무조건 반말을 할 것이 아니라 서로 존댓말을 사용하면 어떨까요?

존중받고 자란 우리 어린이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 다른 사람을 존중하며 배려하는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요? 무시와 억압 속에서 지낸 어린이들은 존중하는 법을 알기 어렵습니다. 어린이를 존중하는 일은 결국은 우리 사회를 밝게 만드는 일이 될 것입니다.

얼마 전 라디오를 듣는데 정치인들의 잘못된 행동을 이야기하면서 진행자가 이렇게 말하더군요.

“초등학생도 아니고 말이죠.”, “초등학생도 그렇게는 안 해요.”

물론 진행자가 어린이를 비하할 의도로 한 말은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말은 하지 않았으면 해요. 이 말에는 은근히 초등학생을 무시하는 생각이 담겨있으니까요. 어린이는 나이가 어릴 뿐이지 어른들이 함부로 대해도 되는 대상은 아닙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어른들에게 작은 실천을 제안합니다.

첫째, 어린이에게 존댓말을 사용하면 좋겠어요. 어른끼리는 나이가 어려도 반말 잘 안 하잖아요? 어린이에게도 그렇게 해주면 좋겠어요.

둘째, 어린이를 부를 때 이름을 불러주세요. “야!” 혹은 “너!”라고 부르지 말고 부드럽게 이름을 부르면 좋겠어요.

마지막으로 어른이 먼저 인사하면 어떨까요? 어린이가 어른 보고 인사할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먼저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해보면 좋겠어요. 물론 웃으면서요.

인사는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보고 배우는 것이니까요. 저부터 실천해볼게요. 같이 실천하실 분이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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