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불 잡이
개불 잡이
  • 김경순 수필가
  • 승인 2022.12.13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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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문앞에서
김경순 수필가
김경순 수필가

 

숙소를 떠나기 전 산책 차 들른 바다는 드넓은 갯벌이 펼쳐져 있었다. 저 멀리 조개를 캐는 사람도 보이고 물이 막 빠진 곳에서 서성이는 사람도 보였다. 갯벌을 한참을 걸어 간 끝에 우리도 바닷물이 찰랑이는 곳에 이르렀다. 걸어오는 도중 물이 채 빠져 나가지 못한 곳에서 조개 하나를 주었는데 그냥 살려주고 말았다.

그렇게 갯벌을 눈으로 훑으며 멈춘 곳에는 내 나이쯤 되어 보이는 세 명의 남자들이 보였다. 남자들은 삽으로 펄을 파고 있었다. 가만 보니 조금 전 우리가 걸어오던 길에 보았던 구멍들이었다. 남편과 나는 그 구멍들을 보면서 낙지가 들어간 구멍이라고 생각했었다. 들고 있는 작은 플라스틱 양동이에는 반절 쯤 찬 수확물이 보였는데 낙지가 아닌 개불이었다. 순간 남편과 나는 눈이 반짝였다. 남편이 좋아하는 해산물 중 하나가 개불이었다. 숙소에서 삽이랑 양동이를 얻어올 걸 아쉽다는 생각을 하며 그들이 개불을 잡는 모습을 유심히 관찰했다. 다음에는 우리도 잡아 보자는 심산이었다. 가만 보니 조금 전 우리가 걸어오던 길에 보았던 수상한 구멍들이 다름 아닌 개불이 숨어들어 간 구멍임을 알았다. 게 구멍과 개불구멍은 확연히 차이가 났다. 게 구멍은 펄이 시작되는 곳에서부터 자주 눈에 띄었다. 하지만 개불이 숨은 구멍은 수심이 제법 깊은 물이 막 빠져나간 근처에 이르러서야 보였다.

개의 불알을 닮았다하여 붙여진 `개불', 보기에는 좀 징그럽기는 해도 회로 먹으면 단맛도 나고 꼬들꼬들한 식감에 미식가들이 개불을 즐겨 찾는다고 한다. 어젯밤 우리가 주문한 상에도 개불이 있었다. 물론 나는 회를 먹지 못해 그 맛을 잘 모른다. 우리는 조개 찜과 회가 세트로 되어있는 메뉴를 주문했다. 개불을 식탁에서만 보다 직접 잡는 모습을 보니 신기했다. 개불의 구멍은 특이해서 쉽게 눈에 띄었다. 남자가 개불 구멍에 삽을 쑥 밀어 넣었다. 남자의 삽에 펄 흙이 한 삽이 그득하게 담겨 나왔다. 삽이 들어갔던 펄 속에는 더 큰 구멍이 보였다. 남자는 지금 개불이 도망치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이제는 잡으려는 남자와 잡히지 않으려는 개불의 속도전이었다. 남자가 한 삽을 푹 퍼내면 개불은 어느새 펄을 밀고 다른 곳으로 줄달음질 친 후였다. 하지만 도망간 자리가 너무도 뚜렷해 추격하는 사람의 눈을 피할 수는 없었다. 나는 개불이 더 빨랐으면 하고 빌었다. 하지만 매번 승자는 남자의 삽이었다. 깊게 파진 펄 속에서 미쳐 온 몸을 숨기지 못한 개불이 보이자 남자의 얼굴에는 승자의 미소가 번진다. 뒤이어 남자는 나오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는 개불을 잡아 끄집어내는데 성공했다. 어느덧 남자의 양동이에는 늘어진 개불들이 한 가득이었다. 나는 그 개불들이 펄 속에서 끌려나오는 모습이 안쓰러워 이내 발길을 돌렸다.

개불을 잡는 남자들과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는 조개를 캐는 여인들이 보였다. 날카로운 돌들과 조개껍질로 가득한 곳에서 호미로 캐는 것은 바지락이었다. 바지락이 들어 있는 망 안에는 조금 전 내가 놓아 준 조개와 똑같은 조개가 하나 보였다. 내가 그 조개에 관심을 갖는 것을 눈치 챘는지, 자신들은 그 조개는 잘 줍지 않는다고 했다. 명주조개라고 부르는데 해감이 쉽지 않기 때문이란다.

남편은 아직도 미련이 남는지 여전히 개불을 잡는 남자들의 곁에서 붙박이가 된 모양이다. 나는 슬그머니 다가가 남편의 팔짱을 꼈다. 남편은 아쉬운 표정을 하고는 나를 따라 펄을 나왔다. 남편은 다음에 오면 개불을 꼭 잡겠다고 한다. 하지만 개불을 잡는 것이 그리 만만해 보이지 않으니 남편의 소망은 요원해 보인다. 바닷바람에 몸이 더욱 옴츠러들었다. 펄 밖으로 나와 문득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꿋꿋이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바다와 함께 아름다운 한 폭의 풍경으로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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