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가 되고 싶은 계절이다
나무가 되고 싶은 계절이다
  • 김일복 시인
  • 승인 2022.12.13 19:32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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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일복 시인
김일복 시인

 

입동(立冬)이 지났는 데 노란 은행잎 사이사이로 푸른 것들이 숨어 있다. 기후 탓일까? 비가 막 쏟아지고 흰 눈이 펑펑 휘날릴 것 같이 을씨년스런 날씨다. 샛노랗고 퍼런 마지막 이파리까지 땅바닥으로 떨어지겠다. 떠난 가을이 슬프다. 바스락거리는 덩치 큰 플라타너스의 잎을 보면 더 슬프다. 이런 날에 나도 누구의 나무가 되고 싶어진다.

얼마 전 도서관 가는 길에 희한한 광경을 보았다. 한 사람이 나무 장대로 은행잎을 털어내면 몇몇 사람들은 잎을 주어 마대자루에 담았다. 왜 은행나무에 붙어 있는 잎을 마구 쳐 털어내는지 의문이 들었다. 도시의 환경 때문일까? 아니면 뭘까? 나무에 붙어 있어도 그렇고 땅에 떨어져도 충분히 아름다운 노란 가을 길을 만들어 주지 않았던가?

첫눈이 내린다는 소설(小雪)이다. 한 해의 끝자락에서 윙윙거리는 기계톱 소리와 잘려나가는 은행나무가지를 보았다. 한 사내가 작은 사다리차에 올라타 땀을 흘리며 여기저기 모양을 갖추는 듯, 잘라내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아팠다. 마치 팔, 다리가 잘려나가는 듯했다. 안타까운 마음에 멍하니 자리를 뜰 수가 없었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가지를 쳐내야 하는가? 하늘 높이 솟아 있기에 살아남은 나뭇가지는 더 외롭다는 생각이 든다.

충북 영동 천태산 기슭에 자리 잡은 영국사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은행나무가 있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두 손 모아 기도를 하거나 한지에 바램을 적어 금줄에 매달아 놓는다. 어떤 이는 고령인 은행나무에 절을 올리기도 한다. 나뭇가지를 잘라내는 것과는 상반된 모습이다. 은행나무는 사람들의 기도를 들어줄까? 사고(思考)의 차이가 편리한 대로 해석이 된다.

은행나무는 멸종위기에 지정된 식물이다. 가로수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나무지만 자연 상태에서 번식하고 살아남는 은행나무는 거의 없단다. 원인은 은행 열매의 독성 때문에 살아남는 동물이 없고, 유일한 매개동물이 인간이라고 한다. 자연 상태에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 살다 보면 바람에 나뭇가지가 꺾어나가는 일처럼 아프지만, 인과관계처럼 순응하면서 받아들이는 것도 필요하겠다.

나무의 계절은 계절마다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시시때때로 발목이 꺾여 넘어지고 무릎이 까지고 피가 나야 계절이 지나가는 것을 안다. 그래서 더 아프다. 은행나무 잎을 털어내는 것도 가지를 잘라내는 일도 어쩌면 내가 살아가는 과정이 아닐까? 털어 낸 메마른 몸으로 뻣뻣하게 서 있을 은행나무 옆에서 나도 서 있고 싶다.

추운 겨울이 내게도 왔다. 팔다리가 잘려나가는 고통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은행나무의 겨울나기를 보면서 변명하지 않기로 했다. 예기치 못한 순간이나 부서지는 아픔이 있더라도 누군가에게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고 싶다. 나무가 움직이지 않고 늘 자리에서 견디는 것처럼 말이다. 나무의 뿌리는 줄기와 생명을 다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같이한다, 새순이 돋는 봄이 오면, 잘 견뎠느냐고 깨금발로 뜀뛰며 손짓으로 말하고 싶다.

봄에는 초록의 시작으로 묵묵히 세상을 열고, 여름에는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가을에는 풍성한 열매와 노란 단풍으로 절정을 이루다 겨울을 보내야 하는 게 나무의 삶이다. 인간의 삶도 자연과 다르지 않다. 우리가 정원을 가꾸는 일도 우리의 삶을 가꾸는 일상도 따뜻한 햇살과 세상이 하나가 되는 바람이겠다. 새해가 다가온다. 누군가의 나무가 되고 싶다면 먼저 자신에게 선물하고 싶은 나무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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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수 2022-12-16 14:59:15
저도 좀더 넓게뻗은 건강한 뿌리를 가진 사람이 되어야 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저절로 생각에 들게하는 멋진 글 감사합니다.

이현주 2022-12-16 13:35:31
좋은 글 감사합니다~
저 또한 누군가에게 필요한
더욱 단단히 뿌리내리는 나무가되어 보려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