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은 미래에 남겨지는 유산
건축은 미래에 남겨지는 유산
  • 김인철 아르키움 대표
  • 승인 2022.12.13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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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김인철 아르키움 대표
김인철 아르키움 대표

 

우리의 현대건축은 아직 한 세기에 이르지 못할 만큼 나이를 먹지 못했다. 전통시대에서 벗어나는 시기에 강제로 이식된 새로운 양식에 낯설어했었고 뒤이은 전쟁을 복구하는 과정에서 건축은 건물을 세우는 일이었을 뿐 문화를 집약하는 사회적 산물이라는 사실에는 접근조차 하지 못했다. 이후 근대화와 현대화를 두서없이 거치며 오늘에 이르기까지 각 분야의 성취는 한류라는 명제를 세계에 띄울 만큼 발전했지만 유독 건축 분야는 계몽주의 시대에 머물러 있다.

건축은 단순히 건물을 짓는 물리적인 작업이 아니라 그것이 만들어지는 시대상을 반영하는 문화의 징표를 만드는 일이다. 당시의 기술과 감각과 철학이 녹아 이루어지는 문화유산이 된다. 그러나 우리는 도시의 풍경과 일상의 형식을 결정하는 건축의 화학적 결과는 도외시한 채 형태와 크기와 용도의 합목적성에만 열중했을 뿐이다. 건축에 종사하는 전문인들조차 그것에 연연하지 않았으며 일반인들은 건축의 가치에 대한 교육을 받을 기회마저 얻지 못했다. 결국 우리의 건축문화는 필요를 해결하는 물적 장치이거나 재산증식의 수단으로 동원되는 부동산의 의미로만 여기는 현상으로 유지되고 있다.

건축은 그것이 자리한 장소에서 긴 시간 동안 존재하며 세대와 세대를 이어가는 기억의 매체로 역할 한다. 건물의 물리적이거나 기능적인 수명은 보수, 보완 등으로 용도까지 바꾸며 유지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건축이 가지는 역사와 상징으로서의 가치이다. 생각해보면 그 건물은 주어진 기능을 수행하며 그곳에서 일어났던 온갖 사건과 사연을 그 공간에 담아두고 그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회상의 계기를 제공할 것이다. 그것은 곧 그 사회의 역사가 된다.

건축의 형식을 양식이라고 한다. 양식은 지역, 문화권마다 다르고 또 시대를 달리해 나타나지만, 특징은 고정되지 않고 변하는 특징을 갖는다. 우리의 건축은 전통양식에서부터 모더니즘이라 불리는 현대양식으로 오는 과정이 순탄하지 못했다. 자연스러운 문화의 전이가 아니라 강요된 문화의 이식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또한 역사이기에 피동적인 수용이었다고 해서 부정하거나 지우려는 것은 열등감에서 비롯된 것일 뿐이다. 왜색 운운하는 것은 치졸한 트집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 건축이 이루어지는 과정의 하나였다고 대범하게 넘길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새것을 만들기 위해 헌것을 치우는 것은 성형하듯 주름을 지우는 것과 같다. 연륜의 증거를 지운다고 젊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래서 잃는 것은 그동안 이루어낸 관록이며, 그곳에 담긴 시간이며, 그곳에서 만들어진 기억이다. 땅에 자리하는 건축은 하나의 장소가 되고 풍경이 되며 시간을 더해 하나의 역사적 사실이 된다. 지구 상의 유일한 곳이 될 수 있는 바로 그곳을 새것이 좋은 것이니 털어내야겠다는 어리석음을 왜 되풀이하려 하는가. 장치는 바뀌지만, 건축은 미래에 남겨지는 유산으로 매김 되어야 한다.

직지의 도시 청주는 천오백 년의 역사를 증명하는 실제의 증거를 갖고 있다. 역사는 과거의 기록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준비하는 오늘의 자세를 바로 세우는 지침이 되는 것이다. 낡고 허름한 건물일지라도 그것이 품은 역사적 의미를 생각한다면 육십 년, 나아가 백 년 이백 년의 시간을 더할 수 있을 것이다. 시간의 흔적은 만들려고 해서 만들어지지 않는다. 지우는 것이 능사가 아님을 안다면 무생물에 생명을 부여하는 일에 서툴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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