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 내린 눈
밤에 내린 눈
  • 김태봉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 승인 2022.12.12 19:5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태봉 교수의 한시 이야기
김태봉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김태봉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날씨가 추워지는 겨울은 비 대신 눈이 내린다.

어디든 요란한 소리를 내며 오는 비와는 달리 눈은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슬며시 찾아오곤 한다.

특히 사람들이 잠들어 있는 밤에 내린 눈은 기척도 없이 찾아온 손님처럼 이미 대문을 열고 마당까지 들어와서는 주인이 깨기만을 기다린다.

당(唐)의 시인 백거이(白居易)도 밤새 내린 눈의 낌새도 못 차리기는 마찬가지였다.

밤에 내린 눈(夜雪)

已訝衾枕冷(이아금침랭) 어쩐지 이부자리가 차갑다 했더니
復見窓戶明(부견창호명) 게다가 창문 쪽도 훤해 보였다네
夜深知雪重(야심지설중) 깊은 밤에 눈이 많이 쌓인 걸 아는 것은
時聞折竹聲(시문절죽성) 가끔 대나무 부러지는 소리가 들려서라네

겨울 밤 깊은 잠에 빠져 있노라면 세상에 무슨 일이 일어나도 알 수 없을 것이다.

방이라는 공간과 바깥세상은 차단되어 있는데, 그 차단의 정도가 밤이 되면 더 심해지게 마련이다.

거기다가 눈은 비와는 다르게 소리도 없이 내린다. 그러니 밤에 잠들지 않고 있더라도 눈이 온 것을 모르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예민한 시인은 그가 잠을 자고 있는 방의 분위기가 뭔가 다르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낀다.

덮고 있던 이불과 베고 있던 베개에 냉기가 돈다든가 아직 새벽은 멀었는데 창문 쪽이 밝아 보인다든가 하는 것 등이다.

평소와는 다른 뭔가가 느껴지긴 했지만, 이 때까지만 해도 그 이유를 알 수는 없었다.

그런데 결정적으로 어떤 일이 벌어지고 나서야 그 원인을 알 수 있었다.

난데없이 대나무 부러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던 것이다.

그제서야 시인은 그 간의 미심쩍음을 모두 풀 수 있었다.

눈이 많이 내려서 이불과 베개도 차가워진 것이었고, 창문 쪽도 훤했던 것이었다.

대나무 가지가 휘어지다 못해 부러질 정도였니까 눈이 와도 엄청나게 많이 왔던 것이다.

눈이 내린 모습을 직접적으로 묘사하지 않고 방 안에서의 느낌만으로 그려 낸 시인의 솜씨가 절묘하다.

겨울 밤에 눈 내리는 것은 직접 보지 않고도 이부자리 속에서도 느낄 수 있다.

약간 추운 느낌이 들더라도 방 밖의 세상이 온통 하얗게 된 마법을 비몽사몽 간에 느껴 보는 것도 겨울을 사는 즐거움 중의 하나일 것이다.

/서원대학교 중국어과 교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