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같은 풍경에 눈이 더해지면
그림 같은 풍경에 눈이 더해지면
  • 박소연 충북문화재연구원 교육활용팀장
  • 승인 2022.12.11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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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시선-땅과 사람들
박소연 충북문화재연구원 교육활용팀장
박소연 충북문화재연구원 교육활용팀장

 

얼마 전 새벽에 내린 눈으로 온 도시가 마비되는 일이 있었다. 이번 겨울 첫눈은 언제 올까 기다리는 마음이 무색하게, 출근길 갑작스럽게 쌓인 눈 때문에 다들 반가움보다는 짜증이 밀려오지 않았나 싶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조금 더 정확하게 운전을 시작하고부터는 눈이 내리는 것이 반갑지 않았다. 사락사락 눈이 내리는 평온한 순간 뒤에 질퍽거리고 미끄러운 도로가 남겨지기 때문이다. 눈이 오면 아이들이랑 동네 강아지만 신난다는 예전 어른들의 말에 자꾸 공감이 된다.

이렇게 눈 오는 것이 즐겁지 않은 어른이 되고 말았지만, 그래도 눈 내린 겨울을 생각하면 머릿속에 딱 떠오르는 곳이 있다. 바로 제천의 정방사이다. 참고로 제천의 겨울은 유독 춥고 눈도 많이 내린다. 몇 년 전 우연한 기회에 정방사를 방문하게 되었는데, 그때 역시 며칠 전 내린 눈이 소복이 쌓여 있는 상태였다. 눈길에 차로 산을 오르는 것은 무리였기에 큰 길가에 주차하고 약 2㎞가량을 걸어 오르기 시작하였다. 중간 중간 나무에 쌓였던 눈이 떨어지는 폭탄을 맞으며 `내가 대체 왜, 이 날씨에 여기를 가는 거지? 지금이라도 되돌아갈까?' 등등 온갖 부정적인 생각들을 수도 없이 할 때쯤, 정방사에 다다르게 되었다.

제천의 명산 금수산에서 뻗어 내린 신선봉 자락에 있는 정방사는 속리산 법주사의 말사로, 신라시대 의상대사가 창건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깎아지른 절벽 아래 지어진 비교적 작은 사찰로, 일주문 대신에 좁은 바위틈 사이로 난 길을 통과해야 정방사로 들어갈 수 있다. 산비탈의 좁은 곳에 세워진 까닭에 일반적인 사찰과는 다르게 건물들이 옆으로 나란히 배치된 것이 조금 색다르게 느껴진다.

이곳의 중심 건물은 원통보전으로, 안에는 충청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관음보살좌상이 모셔져 있다. 몸에 비해서 작은 얼굴을 하고 머리에는 보관(寶冠)을 쓰고 있는데, 보관에 작은 부처가 새겨져 있어 `나는 관음보살이다'라고 말해준다. 이 보살상 안에서는 『묘법연화경』을 비롯하여 삼존불을 만들었다고 하는 기록이 발견되었는데, 발원문에 `강희 28년(康熙二十八年)'이라는 글이 적혀있다. 그래서 이 보살상을 만든 때가 조선 숙종 15년(1689)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게 해주며, 이를 통해 불상 양식의 변천을 알려주는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그런데 이 관음보살께는 죄송하지만, 정방사의 매력은 따로 있다. 원통보전에서 바라본 경치가 바로 그것이다. 원통보전 앞으로는 겹겹이 펼쳐진 산세와 청풍호가 어우러진 장관이 기다린다. 이 풍경을 보고 있자니 문득 남해 보리암에서 바라본 다도해의 아름다운 모습이 떠올랐는데, 청풍호를 빗대어 왜 내륙의 바다라 부르게 되었는지 알 것만 같았다. 하얗게 내린 눈이 반짝반짝 만들어낸 풍경은 오히려 다도해보다 더 아름다워 보이기까지 했다.

이곳 정방사는 새싹이 돋아나기 시작하는 푸르른 봄도 좋고, 무더운 여름 울창한 숲과 시원한 물소리가 만들어내는 풍경도 멋지고, 울긋불긋 색깔 옷을 입는 가을도 좋지만, 필자가 꼽은 최고는 겨울이다. 자연이 주는 선물을 만끽하고 싶다면 이번 겨울이 가기 전에 정방사를 한번 방문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아, 눈이 온 다음에 가는 것을 잊지 말자. 온 세상이 하얗고 햇빛을 받아 반짝거리는 광경을 마음속에 많이 간직해 둘 수 있을 것이다. 또 한 가지, 근심을 덜어준다는 뜻의 해우소도 꼭 들러야 한다. 이곳에서 보는 경치 또한 빼어나 놓칠 수 없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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