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만의 전설을 위해
자신만의 전설을 위해
  • 심억수 시인
  • 승인 2022.12.04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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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엿보기
심억수 시인
심억수 시인

 

하늘과 땅을 가득 채운 햇살이 나를 감싼다. 햇살은 백마강 물 위에 출렁인다. 바람에 일어서는 햇살이 낙화암 절벽을 타고 올라간다.

칠십 평생 수없이 많은 날 해를 바라보며 살아왔다. 오늘처럼 가을 햇살이 뜨겁게 가슴에 파고든 적이 있었던가. 가을 햇살에 곱게 웃는 수많은 얼굴들이 무언의 전설을 들려준다.

부소산 기슭에 백제의 새 왕조 사비가 세워졌다. 사비는 백제 때 도읍 자체의 명칭이기도 하단다. 백제 때에는 부여 일대의 평야를 사비원이라 했다. 금강을 사비하라고도 했다.

사비성은 반달 모양으로 휘어져 독특한 산성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부여 읍내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반월루가 있다. 반월루는 부소산성의 옛 이름 반월성에서 따온 이름이다. 이곳에서 보이는 백마강이 반월이어서 반월성으로 불렀단다.

성내에는 동·서·남문지가 있다. 북쪽 골짜기에 북문과 수구가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고란사, 낙화암, 서 복사터, 궁녀사 등이 있다.

해설사의 박학다식한 이야기는 사비도성 가상체험관에서 백제의 찬란한 역사와 문화로 현실을 압도한다. 있어야 할 것이 있어야 할 곳에 없어서 누릴 수 있는 감동의 시간이었다.

나당연합군에 항복한 의자왕은 백성의 안녕을 보장받기 위한 최후의 선택이었을 것이다.

수도가 함락되자 적군에 쫓긴 백제의 여인들은 모욕을 피하기 위해 부소산 정상으로 피신하였다. 벼랑 끝에 내몰린 여인들은 치마폭으로 머리를 감싸고 타사 암으로 뛰어 내렸다.

장엄한 순간 하늘도 숨을 죽였다. 훗날 시인묵객은 꽃처럼 떨어진 여인들의 슬픈 사연에 타사 암을 낙화암이라 불렀다.

백제 여인들의 시린 가슴에 저린 아픔의 원혼이 담긴 햇살이 백화정에 앉아있다.

백마강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햇살의 현으로 금을 탄다. 망국의 한은 공명(共鳴)의 파동으로 가슴을 파고든다. 눈물이 메말라 삼킬 수 없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울었기에 백마강에 흐르는 햇살이 처연하다.

불로장생을 꿈꾸었던 백제왕의 욕심이 화를 자초했을까 마는 망국의 한을 추스르지 못하고 무심히 넘긴 세월이 고란사 뒤편 바위틈에서 눈물 쏟는다.

고란사는 고려시대에 낙화암에 투신한 여인들의 원혼을 위로하기 위해 지어진 절이란다.

가을빛 가득한 고란사 단풍이 곱기도 하다. 고란사 풍경소리에 놀란 단풍이 우수수 떨어진다. 경내에 수북한 낙엽에 가을이 쌓여간다. 풍경은 가슴으로 울고 백제 여인의 혼백으로 떨어진 어린 단풍이 너무 고와서 슬픈 가을이다.

두 손 합장하고 스님에게 미소를 보내며 극락보전에 들었다. 극락보전은 관세음보살과 목조 아미타불 여래와 대세지보살의 삼존불을 모셨다.

가족과 나라의 안녕을 기원하며 고정관념 속에 자리한 백제의 허실을 고란사 극락보전 삼존불 앞에 내려놓았다.

역사는 돌고 돌아 숱한 이야기를 만들고 전설을 남긴다. 나는 살면서 어떤 이야기를 남기고 있는 걸까. 이웃들에게 내 삶의 이야기를 부끄럽지 않게 들려줄 수 있는 삶을 만들어 가야겠다.

우리 삶에는 정답이 없다. 다만 정도가 있기에 자신만의 삶을 위한 가치를 정해놓는다. 누구나 자신만의 전설을 위해 끝없이 이야기를 만들어 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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