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산시의 궤변
아산시의 궤변
  • 충청타임즈
  • 승인 2007.09.07 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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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이 재 경<부장(천안)>

기원전 330년 무렵, 공자 사후 1세기가 지난 뒤 주유열국에 나선 맹자가 첫 방문국에서 친구를 사귀었다.제나라의 장수광장(匡章)이다.

그는 나라안에서 평판이 매우 나빴다. 아버지와 싸워 불효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맹자는 그와 교유하고 예까지 갖춰 그를 높였다.

맹자에게 제자 공도자(公都子)가 불만을 품고 물었다. "스승님, 왜 그런 사람과 사귀십니까."

이때 맹자가 그 유명한 불효의 다섯가지 예를 들며 광장과 사귀는 이유를 말한다. "세상엔 다섯가지 불효가 있다. 그 첫째가 사지를 게을리해 부모를 봉양하지 않는 것이며, 둘째가 놀고 술마시며 봉양하지 않는 것이고, 그 다음이 재물을 좋아하고 처자만을 위하며 봉양하지 않는 것이다. 넷째는 욕망때문에 부모를 욕되게 하는 것이고, 마지막이 잘 다투고 사나워 부모를 위태롭게 하는 일이다."

광장이 아버지와 싸운 이유는 어머니의 죽음 때문이었다. 그의 어머니가 부정을 저지르자 아버지는 직접 자신의 손으로 아내를 살해했다. 광장은 비록 어머니가 잘못했다 하나 아버지가 자신의 손으로 이를 단죄한 것은 잘못 된 것이라고 항변하다 집에서 쫓겨났다. 정절을 으뜸 덕목으로 알고 있던 제나라 사람들은 이 사실을 알고 아들인 광장의 잘못만을 꾸짖고 그를 외면했다.

맹자는 공도자에게 되물었다. "이 다섯가지가 불효일진대 광장이 여기에 해당되는 잘못을 한 것이 있더냐" 공도자는 말을 잇지 못했다.

광장은 어머니가 죽고 아버지에게 쫓겨나면서 효를 다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자 곧바로 자신의 가정을 해체했다. 아내를 내보내고 아들에게 봉양받기를 물리치며 독신으로 살았다.

맹자는 이런 광장의 심지를 높게 평가하며 그를 '용기있는 사람'으로 보고 그와 거리낌없이 사귀었다.

전한시대 유향이 지은 전국책에 보면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광장이 진나라 출정을 앞두고 있는데 왕이 말했다.

"너의 어머니가 죽어 마굿간 옆에 묻혀 있는데 승리하면 좋은 곳으로 이장을 시켜주겠다." 그러자 광장은 단호하게 이를 거부한다. "저는 어머니 묘를 이장할 수 없습니다.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죄를 지었고, 아버지는 어머니의 묘를 어찌하라는 말씀이 없이 돌아가셨습니다. 제가 어머니의 묘를 이장하면 아버지를 속이게 되는 것이니 절대 이장을 할 수 없습니다."

요즘 현실에서는 융통성이 전혀 없는 고지식한 사람으로 받아들여지겠지만, 광장의 이같은 말에서 그의 효심의 깊이를 느낄 수 있다. 이 말로 광장은 후에 모함에서도 벗어난다.

그를 시기하던 사람들이 광장이 진나라에 투항하려 한다고 하자 왕이 되받아 말했다. "그럴리 없다. 돌아가신 아버지도 속이지 않으려는 광장인데 설마 나를 속이겠는가." 최근 아산시가 시비를 지원하는 해외유학연수 프로그램에 시장, 총무과장 등 공무원과 전·현직 시의원, 농협조합장 등 지역유지 자녀들을 대거 포함시켜 눈총을 받고 있다. 1년 과정의 미국 유학에 2000여만원이 드는데 시가 운영하는 장학회에서 학비를 지원하고 각종 절감혜택까지 받아 절반 값이면 유학을 갈 수 있다.

이렇다보니 이를 잘 몰라 자녀들을 참가시키지 못한 학부모들의 불만이 보통이 아니다. "두 달간 홍보를 거쳐 참가희망자를 접수했으나 지원자가 없어 부득이 직원 자녀들로 채우게 됐다"는 시측의 변명이 궁색하기만 하다.

언론에서 '아산시, 자기 자식들만 유학생 선발'이란 제목으로 대서특필되자 시민들은 어이없다는 반응들이다.

맹자가 불효의 세번째 예로 든 '처자만 위하고 부모를 봉양하지 않는 것'을 여기에 대입하면 지나친 것일까.

지방관아의 벼슬아치들이 자신들의 처자만 위하고 백성들을 받들지 않는다면 이것은 어떤 잘못에 대한 예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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