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분 19초
6분 19초
  • 이은일 수필가
  • 승인 2022.12.01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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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의 한가운데
이은일 수필가
이은일 수필가

엄마가 이름을 말하며 동영상이 시작된다. 앞으로 몇 걸음 걸어 나오는가 싶다가 약간의 흔들림과 함께 짧은 탄성이 들린다. 발이 공중에 뜬다. 비행 시작이다. 엄마를 중심으로 사방으로 보이는 배경은 변화무쌍하다. U자로 굽어 흐르는 남한강 줄기가 발아래로 내려다보이는 아름다운 풍광이었다가, 다복다복 단풍들어 알록달록한 가을 산이 펼쳐지기도 하고, 카메라의 각도에 따라서 초승달처럼 펼쳐진 기구 뒤로 파란 하늘을 비추기도 한다. 엄마의 표정도 수시로 바뀐다. 가슴 벅차하다가 상기됐다가 살짝 웃는다.

지난달 있었던 엄마의 패러글라이딩 동영상을 보는 중이다. 생각할수록 태워드리길 잘한 것 같다. 내가 작년 이맘때쯤 양평에서 아들과 패러글라이딩을 하고 나서 팔십이 넘은 엄마에게 패러글라이딩은 권한 건, 아들 덕분에 해봤던 아주 특별한 경험을 나 역시 엄마에게 하게 해드리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생각보다 위험하지도 않았고 물론 엄마도 원하셨다. 마침 이번에도 아들 덕분에 좋은 기회가 생겨서 엄마를 모시고 단양 패러글라이딩을 할 수 있었다.

나의 첫 비행에서는 떠오르고 수 분간, 어쩌면 그보다도 짧은 시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자궁 속인 듯 아마득하게 느껴지던 그 순간이 너무나 인상 깊었었다. 그런데 그게 벌써 일 년 전 일이라니. 시간의 빠르기는 나이에 비례한다는 말도 있지만 정말 눈 깜빡할 사이에 한해가 지나간 듯하다. 그러고 보면 누구에게나 공평하다는 시간이 상황에 따라서는 상대적인 측정값으로 제각각 느껴지는가 보다.

언젠가 온종일 비가 내리던 날, 우산을 받쳐 들고 천변을 걷다가 빗속을 날아다니는 하루살이를 보게 되었다. 그때 하루살이에게는 이 빗방울이 물 폭탄일 텐데, 하필 오늘 태어나서 일생 신산한 삶을 살아가는구나 문득 가여운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얼마쯤 걸었을까. 우연히 우산 속으로 하루살이 한 마리가 들어왔다. 나는 그 자리에 멈춰 섰다. 하루살이가 빗방울을 피하지 않아도 되는 안온한 시간을 충분히 누릴 수 있도록 기다려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내 느낌인지는 몰라도 하루살이는 모처럼 편한 마음으로 우산 속 여기저기를 탐색하는 듯 보였다. 그러다 내가 언제까지고 그대로 있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았던지 다시 빗속으로 날아갔다. 하루살이가 우산속에 머물렀던 그 잠깐의 시간을 어떻게 생각했을지 나로서는 가늠하기 어려웠다.

단 하루에 불과하지만, 하루살이의 인생도 독립된 하나의 생인 것은 분명하다. 한해살이풀의 봄 여름 가을 겨울과 주목의 천년 역시 각각 하나의 생이다. 길고 짧음에 상관없이 오롯이 자기 앞의 생을 살아가는 저들에게는 단지 똑같은 삶의 무게로 주어진 시간일 뿐이다. 우리네 인생도 마찬가지고. 하지만 수없이 많은 그 생들이 유일한 단 한 번의 삶뿐이라면 그건 너무 불공평하다. 그게 아니라면, 각각의 생들은 어쩌면 한 번씩 머물다 갈 수 있는 멋진 여행 장소가 될 수도 있고 또는 천상병 시인의 말처럼 생은 한때의 소풍일지 모른다. 소풍 끝나는 날 나는 과연 아름다웠노라 말할 수 있을까?

6분 19초, 활짝 웃는 엄마의 모습으로 동영상은 끝이 났다. 엄마에겐 이 6분 19초가 어떤 시간이었을까? 알 수 없지만,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건 우리가 찾은 보물찾기 쪽지가 꽝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게 연필이든 공책이든 다른 무엇이든 분명 엄마와 나의 소풍을 행복하게 했음에 틀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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