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을 이룬 나무 나무가 모여 이룬 숲
숲을 이룬 나무 나무가 모여 이룬 숲
  • 구숙진 KPCA 그림책 지도사숙
  • 승인 2022.12.01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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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그릇에 담은 우리 이야기
구숙진 KPCA 그림책 지도사숙
구숙진 KPCA 그림책 지도사숙

오래전 개인 수예품 전시회를 간 적이 있다. 화려하지만 도드라지지 않는 색감의 배합, 섬세한 바늘땀들의 아름다움,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커다란 작품 등은 보는 이의 혼을 쏙 빼놓기에 충분했다. 작품마다 품고 있는 고전미에서 우러나오는 세련된 문양은 작가의 모습을 상상하게도 했다. 단아하면서 기품 있는 어느 부인이리라 어림짐작하며 둘러보는데 아주머니 한 분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희끗희끗하고 덥수룩한 커트 머리에 펑퍼짐한 일바지 차림이었다. 당연히 작가님이라는 생각은 배제하고 설명 듣고 감상을 나누었다. 아차, 경험에 의한 비논리적 추론으로 잘못된 판단을 하는 인지 편향에 의한 오류였다. 내가 내뱉은 말들을 주어 모아 봤다. 혹여 맘 상하실 말을 하진 않았는지를. 다행이었다.

수십 년 전, 아이들과 독서지도 수업을 처음 시작하던 시절. 열심히 공부한 만큼 열의로 가득 채운 나의 지식은 자신만만했다. 거듭된 수업은 공부의 필요성을 더 알게 했기에 배움이 있는 지도자란 자부심에 부합하려 노력했다. 나의 이런 자세는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얕은 지식일거라는 생각을 접게 했다. 이 또한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이 전부라 생각하는 인지 편향에 의한 오류였음을 시간은 알게 했다.

사람들은 누구나 인지 편향을 통해서 세상을 본다. 그렇기에 세상과 타인에 대해 완벽하게 객관적인 판단을 하기는 불가능하다. 예로부터 `장님 코끼리 만지기'식이라며 섣부른 판단에 경고하는 이유다.

그림책 <일곱 마리 눈먼 생쥐/애드 영/시공주니어>가 있다. 어느 날, 눈먼 생쥐들의 터 주변 연못가에 아주 이상한 것이 나타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것이 무엇일지 몹시 궁금한 생쥐들은 차례로 탐색에 나선다. 자신이 탐색한 것을 자신이 쌓은 경험에 부합하는 정보에만 주목하여 결론을 내린다. 여섯 마리는 상대방의 정보는 무시한 채 자신이 내린 판단만 고수하며 서로 다툰다.

뇌는 모든 경우의 수를 따져보고 적용해서 판단할 경우 발생하는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한 자구책으로,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것은 개의치 않고 `이런 것 같은' 이유로 의사결정을 한다. 인지 편향이 여섯 마리의 쥐들이 결정한 근거다.

그중 한 마리 눈먼 생쥐는 달랐다. 그 이상한 물체에 다가가 위로 올라 가 보고, 미끄러져 내려가 보기도 하고,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달려가 보기도 한다. 친구들이 준 정보를 모두 수용하고 그를 바탕으로 탐색한 것이다. 타인의 정보를 흡수하고, 선입견을 버리고 정보 탐색하고, 거짓된 상상하며 존재하지 않는 내용 만들어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등 인지 편향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을 한다. 그리고 알아낸다. 그 이상한 것이 코끼리라는 것을. 하나하나의 나무도 볼 줄 알고, 그 나무들이 모인 숲 전체를 본 것이다.

작가는 “부분만 알고서도 아는 척 할 수는 있지만 참된 지혜는 전체를 보는 데서 나온다.”라는 말을 하며 글을 마무리했다.

물론 어렵다. 사람들은 자신이 간절히 소망하는 일을 준비할 때 조급함을 보이기 쉽다. 조급함에 고정된 자신의 신념과 가치관이 더해지면 저마다 가지고 있는 그것들을 지키기 위해 인지 편향을 보인다. 급할수록 돌아가란 옛말이 있다. 빠른 결정이 치명적인 실수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말이다. 미래의 변수를 생각지 않는 뇌의 게으름이 나의 게으름이 되지 않도록, 순간에 몰입하며 인지하고 통찰의 힘을 기르는 연습에 대해 생각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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