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忠淸)이란?
충청(忠淸)이란?
  • 방석영 무심고전인문학회장방
  • 승인 2022.12.01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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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방석영 무심고전인문학회장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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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산 칠성댐 상류 `충청도 양반 길'을 소요하면서 대자연을 기(氣)를 듬뿍 받는 시간을 보냈다. 충청도 양반 길은 `산막이 옛 길'과 연결돼 있으며 등산로라기보다는 댐을 끼고 걷는 산책코스에 가까워서 등산을 즐기지 않는 분들도 비교적 편안하게 걸으면서 몸과 마음을 힐-링 할 수 있을 듯하다. 충청도 양반 길을 걷다가 문득 충청(忠淸)이라는 말을 떠올려 그 의미를 생각해 봤다. 충성 충(忠)은 가운데 중(中)과 마음 심(心)을 합한 글자고 맑을 청(淸)은 물 수(水)에 푸를 청(靑)을 합한 글자란 사실이 새삼스럽기만 했다.

충성 충(忠)이란 中 + 心 즉, 중(中)의 마음으로 그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은 텅 빈 무심(無心) 내지 지공무사(至公無私)한 고요한 마음에 다름 아님을 알 수 있다.

이같은 맥락에서 사서삼경 중 하나인 중용(中庸)은 “喜怒哀樂之未發謂之中(희로애락지미발위지중) 中也者天下之大本也(중야자천하지대본야)”를 설파하고 있다.

희로애락 등의 감정이 일어나기 전의 고요하고 깨어 있는 마음을 중(中)이라고 밝힌 뒤 중이라는 것은 바로 천하의 근본임을 강조하는 가르침이다.

결국 중(中)의 마음이란 `나 없음'의 텅 빈 무심이며 지공무사한 마음이며 심령이 가난한 상태며 그 어느 쪽으로 치우치거나 때 묻지 않은 갓난아기 같은 순수 의식을 의미한다. 0점 조정된 저울만이 정확하게 무게를 재듯 내 편 네 편으로 치우침 없이 그 어떤 주의-주장이나 프레임에도 걸림 없는 0점 조정된 중의 마음이 바로 충(忠)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충성스러운 신하라면 무조건 임금의 편에 서는 일도 없고 임금의 폭정에 대해선 누구보다 앞서 단호하게 비판도 할 것이다. 또 자신의 이득을 위해 아무 잘못도 없는 경쟁자를 정적으로 몰아가며 모함하는 소인배 짓은 결코 하지 않을 것이다.

이 같은 맥락에서 공자님은 극기복례(克己復禮) 즉, 업식의 나를 이기고 예로 돌아감으로써 군자는 고정되고 정형화된 틀인 그릇 즉, 제 주견으로 똘똘 뭉친 아상(我相)이 없다는 의미의 군자불기(君子不器)를 역설하신 바 있다.

군자불기, 무아, 무심, 심령이 가난한 자 등의 가르침을 아무 생각 없는 목석이 되어서 `이래도 흥 저래도 흥'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인 뒤 `그 무엇에도 걸리지 않는다'는 말에 걸려 제멋대로의 삶을 살라는 의미로 곡해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저울을 0점 조정하는 것은 0에 집착하며 머물기 위함이 아니라 정확한 무게를 재기 위함이다. 마찬가지로 마음을 0점 조정해 중의 마음을 회복하는 것은 생각 없는 무심에 머물기 위함이 아니다. 지공무사한 무심에서 분별지를 일으키며 옳은 것은 옳다고 하고 그른 것은 그르다고 하며 다 함께 살기 좋은 세상을 위한 빛과 소금의 역할, 보살의 역할, 리더의 역할을 하기 위함이다. 온갖 생각 감정이 일기 전의 중의 마음, 나 없음의 텅 빈 무심, 심령이 가난한 상태 등이 충(忠)이라면 청(淸)은 무엇일까? 맑을 청(淸)은 물 수(水)+ 푸를 청(靑)을 합한 글자로 물이 푸르다는 말이다. 물결이 출렁이면서 하얀 물거품 등이 일어남 없는 고요한 가운데 절대적 올바름인 푸른 하늘을 품고 있는 상태가 맑을 청이다.

그 어느 쪽으로도 치우침 없는 중의 마음, 맑고 고요한 가운데 하늘과 하나 되어 바르게 생각하고 바르게 말하고 바르게 행동하는 충청인(忠淸人)들로 넘쳐나는 다 함께 살기 좋은 충청도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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