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엔 떠나지 말아요
가을엔 떠나지 말아요
  • 김용례 수필가
  • 승인 2022.11.24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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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용례 수필가
김용례 수필가

 

월드컵 축구로 지구촌이 후끈 달아오르고 나뭇잎은 속절없이 떨어져 뒹굴고 있다.

세상은 평생을 함께한 아내를 이 가을에 떠나보낸 아버지의 슬픔과는 아무 상관없이 돌아간다. 아버지의 아픔을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 49제를 지내며 아버지는 어머니 제사상에 술 한 잔 따라놓고 창밖을 하염없이 바라보신다. 빈 집 같이 허전한 뒷모습에 눈물이 흘러내린다. 아내를 잃은 남편의 뜨거운 눈물은 맑은 액체가아니라 가슴속에서 흘러나오는 진액이다. 어찌 눈물 없이 함께한 시간을 돌아보랴.

봄과 여름내 무성하게 푸르던 나무들도 서리한번 내리면 힘없이 생을 놓는다. 부모님은 혹여 언제 내릴지 모르는 서리를 늦춰보려고 늘 불안해 하셨다.

어머니가 기침을 몇 번해도 아버지가 밥을 조금 덜 잡수시면 엄마는 한 걱정을 하셨다. “큰애야 아버지가 밥을 못 잡수신다”며 전화를 하신다. 입맛 나게 해드릴게 뭐 없을까 걱정하시고 엄마가 미열이라도 있으면 아버지는 겁을 먹고 우리를 불렀다.

서로를 걱정하시다가 엄마가 돌아가셨다. 홀로 남겨진 아버지의 이 쓸쓸함을 어찌 해야 할지모르겠다.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배우자의 부재, 아버지가 아닌 구순노인의 쓸쓸함을 대신 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별은 대부분 슬프고 허전하다. 외로움이나 쓸쓸함은 미약한 통증 같은 것이다. 그 원인과 결과를 명확히 파악하기는 어렵지만 쓸쓸함에는 차가움, 허전함, 외로움이 이런 감정들이 수없이 반복하면서 생기는 마음의 상태다. 봄이나 여름보다는 가을이나 겨울에 더 절실하게 느껴진다. 홀로 있을 때, 또는 모든 관계가 끊겼다고 느낄 때, 새삼 자신에게 주어진 공간의 크기를 느껴질 때 감당하기 어려운 순간에 외로움도 커지고 쓸쓸하다고 느끼는 것 같다.

시대에 따라 정서도 변하는 것 같다. 낭만도 슬픔도 간결하고 건조 해 진 것 같다. 쓸쓸하다는 것은 봄과 여름 쉴 새 없이 바쁘게 논과 밭에서 씨름하던 농부들이 알곡을 키워낸 빈 밭을 바라보면 자식을 다 키워낸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 같을 것이다.

텃밭을 가꾸는 나도 그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다. 깨 한 톨 입에 넣기가 쉬운 일이 아니다. 수십 번의 손이가야 먹을 수 있는 것을 안다. 그렇게 키워낸 빈 땅을 바라보는 농부의 마음은 허전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후련하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 가을은 쓸쓸하다는 감정으로 채워주는지도 모르겠다.

쓸쓸하다는 감정은 사람으로부터, 계절의 변화에 따라, 아무이유도 없음에도 홀로 있는 시간에 느껴봤을 것이다. 아니 궁중들 속에서도 이런 감정이 생긴다. 사람 없는 깊은 산중에서도 외롭거나 쓸쓸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인간의 본성은 감정의 변화를 느끼는 것이다. 그러므로 옆에 누군가 있거나 없거나 감정은 들죽 날죽 한다.

살아가는 이유가 되었던 엄마의 부재로 삶의 의미가 없어진 아버지는 이미 한 겨울처럼 추위를 느끼신다. 아버지의 추위를 이 쓸쓸함을 어떻게 달래 줄 수 있을까.나는 걱정이 크다. 마당에 뒹구는 낙엽을 쓸어내는데 입에서 “가을엔 떠나지 말아요. 차라리 하얀 겨울에 떠나요.”를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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