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눈에 비친 대한민국
아이들의 눈에 비친 대한민국
  • 김시진 크렉션 대표
  • 승인 2022.11.23 19:0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生의 한가운데
최지연 한국교원대 초등교육과 교수
 김시진 크렉션 대표 

 

고백하자면 결혼하면서 남편에게 아이를 갖지 말고 둘이서만 자유롭게 살면 어떻겠냐고 제안했었다. 자신을 잘 알기에 육아를 특별히 잘할 것 같지도, 재미있어하지도 않을 것 같았고, 다른 누군가가 아닌 나를 위해 하고 싶은 일이 훨씬 더 많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큰 이유는 대한민국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일에 대한 걱정 때문이었다.

결혼한 여성이 아이 낳아 키우는 일이 무슨 대수인가 반문할 수도 있지만, 오늘의 한국사회에서 이런 생각이 결코 유별난 걱정은 아니다. 한국의 합계출산율(여성 한 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하는 평균 자녀의 수)은 2021년 기준 0.81명으로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인데, 이때 가장 많이 거론되는 원인이 바로 결혼과 출산, 육아의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 보수적인 결혼 문화와 부모의 경제력이 한 가정의 출발선을 결정하는 주택 문제, 내 아이가 결혼할 때까지 쏟아야 하는 어마 무시한 양육비와 교육비, 출산과 동시에 직장을 포기해야 하는 경력단절의 문제까지. 성인이 된 순간부터 선, 후배, 또래의 여성들과 수없이 나누었던 고민이고 현실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기 어려운 이유는 또 있다. 경제, 문화 강국으로 국제적 위상이 높아졌다고 하지만 지금도 한국은 후진국형 인재(人災)가 끊이지 않는 안전하지 않은 나라다. 성수대교 붕괴, 삼풍백화점 붕괴, 씨랜드 청소년수련원 화재, 대구지하철 방화와 세월호 침몰. 유독 `참사'라고 이름 붙여진 대형 사고들로 수많은 아이들이 목숨을 잃었다. 그때마다 모두가 반성했고, 매뉴얼을 만들고 시스템을 정비하겠다고 했지만, 또다시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축제를 즐기고 있던 수백 명의 젊은이가 참변을 당했다. 그리고 그때마다 대통령, 국무총리와 장관, 시장, 정치인 등 책임 있는 자리에 있는 어른들은 책임을 피하기에 급급했고, 이해하지 못할 실언들로 국민의 공분을 샀다. 화성씨랜드 사고 당시 화성군 부군수는 “내가 아이들을 죽였냐”고 물었다는데, 20여년 후, 이태원 참사에서 국민의 안전을 책임지는 주무부처의 장관은 “경찰과 소방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고 발언했다. 이뿐인가. 정쟁에 매몰되어 희생자들을 조롱하고 혐오를 부추기는 사람들, 사실 확인 없이 자극적인 기사부터 쏟아내는 언론. 대한민국의 민낯이 드러난 순간, 어른들의 모습은 참담하고 부끄럽다.

결혼이라는 제도 속에서 모두의 반대를 무릅쓰고까지 딩크족을 고집할 수 없었던 나는 결국 아이를 낳았다. 놀랍게도 출산의 과정은 내 인생을 통틀어 가장 강력한 경험 중 하나였다. 그러나 여전히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은 아이를 갖지 말자고 제안했던 십여 년 전 그때와 달라진 게 없다. 애지중지 딸 둘을 키웠던 나의 엄마는 혹시라도 나쁜 일이 생길까 봐 우리를 한순간도 혼자 밖에 내 보내지 않으셨다. 진도 앞바다에서 수학여행을 가던 아이들이 희생된 장면이 트라우마처럼 가슴에 박힌 나도 아직 우리 아이를 혼자 밖에 내 보낼 수 없다. 요즘 엄마들은 아이들에게 낯선 사람에게는 인사하지 말라고 가르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어른을 믿지 못하는 사회를 만든 것은 온전히 우리 어른들의 책임이다.

“어른들이 생명을 존중하고 책임을 다하는 사회 안에서 저희들이 목숨 걸지 않고 걱정 없이 꿈을 펼칠 수 있게 해주세요” 이태원 참사 희생자 추모제에서 추모글을 낭독하던 소녀의 말이다. 사회 안전망을 설치하고, 언제 어디서나 국민이 행복하게 생활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일을 우리 어른들은 지금껏 소홀히 해왔다. 엄마가 바라보는 대한민국과 우리 아이들의 눈에 비친 대한민국의 모습이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아 서글프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