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땅의 야수들
작은 땅의 야수들
  • 하은아 충북교육도서관 사서
  • 승인 2022.11.21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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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가 권하는 행복한 책 읽기
하은아 충북교육도서관 사서
하은아 충북교육도서관 사서

 

소설을 참 좋아했다. 이야기에 위안받고 밝은 미래를 상상하고 현실을 잊게 해주고, 때로는 나를 정확히 알게 해 주는 소설의 빠져 소설만 읽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는 소설로 가득 찬 내 독서리스트가 부끄러워 억지로 사회과학도서나 역사서를 한두 권 읽곤 했다. 그런 시절이 무색하게 소설이 멀어졌다.

특별한 계기는 없다. 바쁘다는 핑계로 끊어 읽기 편한 책들을 선호하다보니 기승전결이 이어지는 소설보다 사실을 이야기하고, 지식을 말하는 책을 찾아 읽었다. 어쩌다 손에 잡혀 읽는 소설책은 낯설었다. 눈으로 읽고 머릿속에 그려지는 풍경들을 상상하며 읽는 일이 꽤 어색하다.

도서 `작은 땅의 야수들'(김주혜 저, 다산책방, 2022)은 바쁜 일상을 잠시 뒤돌아보는 시간에 찾아왔다. 600쪽에 달하는 두께에 잠시 머뭇거렸지만 한 편의 대서사를 다룬 영화를 보듯 속도감 있게 읽어 내려갈 수 있었다. 우리나라 역사 속에 숨겨진 사실인 것 같았다. 역사서에 실리지 못한 민초의 이야기 같아서 더욱 몰입되었다.

눈으로 뒤덮인 백두산 자락에서 호랑이를 잡는 사냥꾼의 모습으로 시작된 이야기는 일제 강점기를 거쳐, 해방되고 한국전쟁이 발발했던 시대의 모습을 다루고 있다. 기생집에 팔려 온 아이, 도시를 떠돌다 거지에서 깡패로 살아가는 아이를 중심으로 그들이 역사 속에서 맞는 소용돌이와 변화를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독립운동을 도왔던 외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고 자랐다고 밝힌 작가는 한국계 미국인이다. 한국의 역사를 삶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했다는 저자는 한국인에 관한 이야기일 뿐 아니라 전 인류의 인간성에 관한 이야기라고 이 책을 소개했다. 지극히 한국적인 소설이 영어로 쓰여지고 한글로 번역되었다는 것에 놀랐다. 만약 위대한 개츠비가 한글로 쓰여졌다가 영어로 번역됐다면 미국인이 느꼈을 그런 감정이었다.

간결한 문장으로 건조한 문체로 정보를 전달하는 책에 길들어진 나에게 오랜만에 감성을 울리는 책이었다. 숨겨진 메타포의 연결점을 찾고 기다리는 재미가 있었다. 매주 같은 시간에 방영되는 드라마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다음 장을 읽어 내려갔다.

우리는 이야기에 왜 열광할까? 있을 법한, 주인공이 나인 것 같은, 나를 다른 세상으로 이끌어 주는 이야기로 가득 찬 소설이 삶을 위로하고 시대를 대변하고 때로는 비판도 했기 때문일 것이다. 나의 20대는 세상의 많은 이야기가 궁금하고 미래에 대한 꿈을 그리기 위해 소설을 그렇게 많이 읽었던 것은 아닐까?

마음이 가는 소설책 몇 권을 골라 장바구니에 넣어 본다. 찬바람이 부는 계절이다. 모두가 마음을 따듯하게 데워 줄 이야기를 찾아 읽어보는 시간을 가지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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