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차를 마시며
꽃차를 마시며
  • 이창옥 수필가
  • 승인 2022.11.17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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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이창옥 수필가
이창옥 수필가

 

언제부터였을까. 꽃과 나무들이 서로 같은 듯 다른 모습들을 바라보고 지켜보는 것이 가슴 뜨겁고 설레는 일이 되었다. 내가 뿌린 씨앗들이 흙을 들어 올리고 여린 새싹을 틔울 때, 무럭무럭 자라나서 꽃을 피울 때, 꽃이 지고 다음 해를 기다리며 씨앗을 받을 때, 나는 내가 살아가야 할 이유를 추가하곤 했다.

그리고 이 가을에 살아가야 할 이유 하나를 더 추가하기로 했다. 꽃차를 덖는 일이다. 꽃을 덖는 일은 꽃에 또 다른 생명을 불어넣어 주는 일이다. 어찌 보면 꽃을 따서 뜨거운 팬에 올려 덖는 일이 인간의 이기심에서 시작된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꽃을 덖어 차로 만들어지기까지 녹록치 않은 시간과 과정을 체득하며 결코 사람의 이기심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어느 것 하나 똑같은 것들이 없듯 꽃들도 그렇다. 같은 꽃이라도 모양새가 다르고 향기도 달라 덖는 방법도 꽃에 따라서 달라진다. 꽃잎이 두툼한 맨드라미는 증제를 하고 고온 덖음으로 익힘과 식힘을 여러 번 반복해야한다. 그리고 손으로 비벼 유념을 해 가면서 덖음을 해야 하는데 흔히들 말하는 구증구포를 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반드시 고온 덖음으로 향 매김을 한 후 잠재우기를 해야 하는데 혹시나 모를 꽃 속에 남아 있는 수분을 날리고 숙성을 해서 꽃차의 풍미와 맛을 깊게 하는 과정이다. 이 모든 과정을 마쳐야 향기로운 꽃차가 탄생한다. 반면 꽃잎이 여린 꽃들은 온도조절을 해가며 조심스럽게 덖음을 해야 하는데 마치 유리그릇 다루듯 조심스럽게 덖음을 해야 한다. 그래야만 꽃잎들이 부서지지 않고 제대로 된 꽃차가 만들어진다.

꽃차를 만드는 일은 긴 시간 인내심과 정성, 기다림이 필요하다. 오롯이 집중해야 온전한 차 맛을 낼 수 있고 꽃에 체온을 불어 넣을 수 있다. 혹여 다른 생각에 휘둘려 한눈을 팔게 되면 꽃은 여지없이 타버려 차의 가치를 잃어버린다. 덖은 꽃송이를 유리다관에 넣고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물을 주전자에 부었다. 잠시 후 마른 꽃잎에 생기가 돌기 시작한다. 춤을 추듯 꽃들이 활짝 피어나며 노랗고 맑게 꽃물이 우러난다. 차를 한 모금 마시니 꽃의 체온이 게으름에 늘어져 있던 나의 체온을 따스하게 덥히고 있다. 시끄럽던 마음이 잠잠해지고 이내 평화가 찾아온다. 이런 기분 정말 오랜만이다.

나는 언제나 바쁘고 빠르게 살아가는 것에 길들여진 사람이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온전하게 나 자신을 들여다본 적은 몇 번이나 될까. 하루하루를 “살아가다”가 아니라 언제나 “살아내다”라고 하는 삶의 표현방식이 의아해 나에게 수없이 질문을 던졌다. 어쩌면 나는 내게 주어진 삶의 부피와 무게를 감당하기 버거웠었나 보다. 그러면서도 아닌 척 늘 쫓기듯 허둥지둥 살다 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 생겨버린 속마음 생채기 같은 것은 아니었을까.

그동안 씨앗을 뿌려 자라난 꽃들을 바라보는 일이 가슴 뜨겁고 설레는 일이었다면 그 꽃을 따서 차를 덖는 일은 바쁘고 빠른 것에 길들여진 나를 잠시라도 내려놓는 일이다. 말간 유리 다관에서 새롭게 피어나는 꽃들을 감상하고 고운 빛으로 맑게 우러난 꽃차를 즐길 때면 언제나 고요하고 평화롭다. 그리고 나를 바라볼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삶을 빠르고 바쁘게 허둥지둥 살아냈다면 이제부터는 느릿느릿 쉬엄쉬엄 살아보련다. 어쩌면 그토록 갈망했던 내 삶의 퍼즐 한 조각은 이런 모습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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