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지, 最古의 환상을 버려야 산다
직지, 最古의 환상을 버려야 산다
  • 연지민 기자
  • 승인 2022.11.14 19: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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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연지민 부국장
연지민 부국장

 

직지를 세계에 알리고 조명하는 2022 직지국제포럼이 10월에 이어 11월에도 열린다. 10월에 열린 포럼은 학술회의로 진행돼 시민들의 관심은 떨어졌지만 세계 속 직지를 다시금 생각해 보는 자리였다.

이날 포럼에서는 `동서양의 금속활자 인쇄술'을 비교하는 자리가 마련돼 세계 금속활자 인쇄술에 관한 다양한 연구가 발표됐다. 눈길을 끌었던 발제는 크리스토프 레스케 교수의 `구텐베르크 인쇄술과 그 증거'와 트루드 데익스트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대학 조교수의 `근대 초기 인쇄술 발명에 대한 논란과 세계적 관점'에 관한 주제 발표였다.

두 학자의 발제를 집약해보면 우리가 서양의 인쇄술을 `구텐베르크'로 확정 짓고 있지만, 유럽의 금속활자술은 한 두 사람의 발명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15세기 중반부터 수많은 유럽도시와 마을들이 인쇄기의 발상지라는 것이었다. 이런 주장은 유럽이 하나의 거대 공동체로 유기적 관계였음을 인쇄기록을 통해 증명하면서 서양의 금속활자 발명을 독일의 구텐베르크만으로 한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런가 하면 우리나라의 금속활자 제조법은 주물사주조법으로 구텐베르크 활자인쇄술과는 완전히 다른 기술이라는 연구도 내놓았다.

동서양의 금속활자술이 영향을 받았는지는 더 연구가 필요하지만 금속활자를 만드는 기술만 본다면 각기 다른 길을 걸어왔다는 분석이었다.

이에 덧붙여 세계 학계에선 전통적인 유럽 중심의 관점에서 벗어나 수백 년 앞서 동아시아에서 이미 시행되고 있었던 인쇄술을 인쇄역사에 포함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어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런 경향에 따라 연구자들 간에 세계 금속활자 인쇄술에 대한 연구 정보를 세계가 공유해야 한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이처럼 서양의 인쇄술을 깊이 연구한 학자들의 발표를 들으며 `직지의 고장 청주'를 도시브랜드로 표방하고 있는 청주의 현재는 어디쯤인지 궁금해졌다.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의 자부심임에도 청주시민만 아는 직지는 아닌지 말이다.

청주시가 30년 가까이 한결같이 도시 브랜드로 내세운 것이 `직지'다. 교육도시, 문화도시, 천년고도라는 도시 정체성보다 직지의 고장이라는 브랜드를 표방하고 강조한 이유는 가치에 주목했기 때문이다. `현존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인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일명 직지)'이란 긴 명칭만큼이나 직지의 가치는 최고(最古)에 방점을 찍었다.

금속활자로 만든 책 중 남아있는 것으로는 가장 연대가 오래되었기에 중의적 의미의 최고라는 수식어가 늘 따라붙었고 자긍심을 안겨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최고라는 이미지는 강력한 유혹만큼이나 깨지기 쉬운 유리알이기도 하다. 최고라고 치켜세우는 순간 다른 인쇄역사물들은 뒷전으로 내밀리게 된다. 최고를 유지해야 한다는 강박감에 새로운 금속활자가 나타날 때마다 직지의 위상이 흔들렸고, 언제 발견될지도 모를 역사라는 불안한 상황에 던져졌다. 학교 교육부터 최고를 지향하는 사회 인식이 직지에도 적용되면서 화려한 수식어에 발목이 잡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국 우리 스스로 `최고'와 `청주'에 갇히게 된 셈이다.

직지가 세계 인쇄역사에서 새롭게 조명받고 그 가치를 견고히 하려면 가장 먼저 최고의 환상을 버려야 한다. 세계 인쇄학자들과의 연구를 공유하고 금속활자와 금속인쇄술을 포함한 인쇄고장으로의 청주를 부각시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최고에서 벗어나 빗장을 열 때 직지도 세계화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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