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아침에 거울을 보고
가을 아침에 거울을 보고
  • 김태봉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 승인 2022.11.14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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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 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김태봉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요즘은 거울이 흔한 물건이지만, 불과 100여년 전만 해도 전혀 그렇지 않았다. 대갓집 대청 마루에나 걸릴 수 있었고 지체 높고 부유한 집의 부녀들만이 소지하는 정도였다.

사람이 살면서 거울을 보는 일이 매우 드물었다. 이따금 볼 때마다 자신이 늙어 가고 있음을 절감하게 될 테니, 차라리 안 보는 것이 정신 건강상 나았을 것이다.

당(唐)의 시인 설직(薛稷)도 간만에 거울을 보고는 자신의 늙음을 실감 나게 목도하였다.







가을 아침 거울을 보고(秋朝覽鏡)



客心驚落木(객심경낙목) 나그네 마음은 지는 나뭇잎에 놀라고



夜坐聽秋風(야좌청추풍) 밤에 앉아서 가을 바람 소리 듣노라



朝日看容髮(조일간용발) 아침에 얼굴과 머리카락을 보니



生涯在鏡中(생애재경중) 내 한평생 이 거울 속에 있구나







가을이 깊어지면 사람들은 또 한 해가 저물고 있음을 실감하며, 세월이 참으로 빠르고 인생이 무상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곤 한다.

그렇지만 내심으로는 자신만은 늙지 않기를 바란다.

시인도 마찬가지였다. 마침 집을 떠나 타지를 떠돌다가 맞이한 늦가을에 대한 느낌은 시인에게 더욱 절절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여관방에서 문득 들린 나뭇잎 지는 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란 것이리라.

따지고 보면 나뭇잎 지는 소리는 아주 작은 소리이지만, 그것이 마음을 놀라게 할만한 소리로 들렸다는 것은 시인이 타지에서 맞은 늦가을에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지를 웅변한다.

그래서 한밤 임에도 잠 못 이루고 앉은 채로 가을 바람 소리를 들으며 세월이 빠르게 지나가고 있음을 절감한다.

그러다가 맞이한 아침에 시인은 우연히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게 되었다. 오랜만에 본 자신의 얼굴과 머리카락에 자신이 살아온 평생이 고스란히 얹혀져 있었다. 자신의 늙음을 자각한 것이다.

늦가을이 되면 사람들은 소리에 민감해진다.

다른 때 같으면 들리지 않았을 나뭇잎 지는 소리나 바람 소리가 또렷이 들리지 않던가? 늦가을 밤에 한 번쯤은 자는 것 대신 가을 바람 지나는 소리를 들으며 지새는 것도 나쁘지 않다. 세월이 가는 소리와 내가 늙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기회는 매우 드물기 때문이다.



/서원대학교 중국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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