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수업
마지막 수업
  • 박명자 수필가
  • 승인 2022.11.14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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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박명자 수필가
박명자 수필가

 

쌀쌀한 날씨가 연일 계속되고 있다. 나무들의 고유한 잎이 수북하게 떨어지고 있다. 붉고 노란 천연의 색, 화려한 융단을 깔아놓은 듯 나무 아래가 환하다. 앙상한 가지만 남은 다른 나무와 달리 햇살이 반사된 단풍잎은 그 빛이 더욱 곱고 짙다. 그 고운 숲길로 유치원에서 봉학골 자연휴양림 숲 교실에 아이들이 찾아왔다. 고요하던 골짜기가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구석구석 햇살처럼 반짝인다.

이 아이들과 무지개색을 찾아보기로 했다. 일곱 빛깔 틀을 땅에 내려놓자. 아이들은 나무 아래로 달려갔다. 단풍잎은 떨어진 순서에 따라 색이 오묘하게 변해 있다. 아이들의 바쁜 걸음으로 육각형 틀 안에 색깔도 모양도 다른 잎들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빨, 주, 노, 초, 파, 남, 보 그런데 파란색과 남색의 액자는 비어 있다. 내가 물었다.

“얘들아, 파란색을 어디서 찾지?”

고개를 갸웃거리던 아이 중 한 녀석이 하늘을 가리키며 소리친다.

“선생님, 하늘이 파래요.”

우리는 파란 하늘을 액자 속에 담았다. 상상의 빛을 초대하기도 했다. 아이들의 마음에 무한한 가능성이 잉태되고 호기심은 무지개처럼 피어나고 있다.

숲으로 한참 더 들어가자 추워진 날씨에 아이들이 옷을 여민다. 바람이 불자 우수수 잎이 떨어진다. 가지만 남은 나무를 바라보며 한 아이가 말한다.

“나무가 춥겠다.”

아이의 표정이 심각하다. 나도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겨울에는 더 추울 텐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

“안아줘야 해요.”

“옷을 입혀 줘야 해요.”

재잘재잘, 천진난만한 의견이 쏟아진다. 그중에서 가장 합당한 의견을 골라 나무에 옷을 만들어 주기로 했다. 잎사귀가 큼직한 백합, 목련 나뭇잎, 솔잎과 단풍잎, 다양한 옷감이 준비되었다. 아이들은 둘러앉아 끈에 연결된 나무 바늘로 잎을 한 장씩 꼬이기 시작했다. 그리곤 아름드리나무 둥치에 묶었다. 알록달록 단풍 옷을 입은 나무가 근사하다. 예쁜 옷을 입었으니 이제는 겨울 추위가 와도 끄떡없겠다. 하고 내가 말하자 아이들의 표정도 안심되는 듯하다. 그동안 푸른 나무 그늘에서 가졌던 다양한 놀이를 생각하며 한 명씩 다가가 두 팔로 나무를 안아준다. 그동안 고마웠어요. 사랑해요. 나무와의 이별식이다.

이 아이들과는 잎이 돋지 않은 초봄에 처음 만났다. 이곳에서 아이들은 꼬물꼬물 올챙이가 폴짝폴짝 개구리가 되는 과정을 지켜보았고, 여름 숲이 떠나갈 듯 울던 매미를 찾아 나섰다가 매미가 벗어놓은 허물 옷이 어찌나 많던지 종류별로 탐색하기도 했다.

봉학골 숲 속에 유난히 많은 잣나무에 잣송이가 통통하게 여물기 시작하면 청설모와 다람쥐가 양 볼이 미어지게 먹이를 물고 가는 것도 자주 보았다.

겨울 양식을 준비하는 그들을 아이들과 응원도 했다.

12월이면 방학이 시작된다, 숲은 추위가 일찍 찾아오므로 11월이면 대부분 마지막 수업이다. 숲에서 놀이를 통해 배려와 믿음을 키웠고, 작은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는 시간으로 채웠다. 나는 손자를 대하는 할머니가 되어 아이들을 맞이했고,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자연을 바라보며 우리는 많은 질문을 주고받았다.

단풍잎을 떨군 나뭇가지 끝에 꽃눈이 도톰하게 솟았다. 내년 봄을 잉태한 겨울눈 속에는 새순과 꽃과 나무의 미래가 작은 세포 안에 모두 저장되어 있다. 아이들의 내면에도 무한한 가능성이 잠재되어 있고, 작은 경험 하나하나가 저장될 것을 생각하면 경이롭다.

`사람이 온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한 사람의 인생이 오기 때문이다' 교보문고 현판의 글이다.

이 얼마나 사람이 소중한가! 산에 나무가 자라듯 아이들의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쑥쑥 자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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