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관의 무게를 곱씹기를
왕관의 무게를 곱씹기를
  • 권혁두 기자
  • 승인 2022.11.13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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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권혁두 국장
권혁두 국장

 

“주님께서 제게 주신 왕관이 선물인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제게는 내내 무거웠습니다”. 16세기 프랑스를 통치했던 프랑수아 1세가 죽으면서 남긴 말이라고 한다. 그의 말마따나 그의 재위 기간(1515~ 1547)이 평탄하지는 않았다. 당시 프랑스는 독일과 오스트리아에 에스파냐까지 아우른 대국 신성로마제국에 앞뒤가 막히고 발칸반도와 동유럽을 장악한 오스만제국이 비엔나까지 밀고 들어와 턱밑을 위협하던 고난의 시기였다.

프랑수아의 라이벌들도 범상했던 그가 감당하기에는 벅찰 정도로 강력한 인물들이었다. 신성로마의 카를 5세는 크고 작은 18개 나라의 왕관을 보유하며 유럽 통일의 꿈을 키우는 중이었고, 쉴레이만 대제는 역사에서 오스만제국의 영토를 가장 넓게 불린 불세출의 군주로 꼽히는 인물이다.

프랑수아는 숙적인 신성로마와 잦은 전쟁을 벌였지만 국력이 달리다 보니 늘 열세에서 싸워야 했다. 신성로마를 견제하기 위해 오스만과의 동맹이 필요했고, 따라서 이교도 국가에 저자세를 취해야 하는 굴욕을 감내해야 했다. 1525년 카를과 격돌한 키파비아 전투에서는 포로로 잡혀 마드리드로 끌려가 1년 가까이 곰팡내 진동하는 독방에 감금되기도 했다. 아들 둘을 대신 인질로 건네고 생환하는 치욕도 겪었다.

프랑수아는 빼어난 군주로 꼽기는 어려운 인물이다. 사생활에서는 사치를 누렸고 염문이 끊이지않을 정도로 방탕했다. 하지만 “당신이 준 왕관이 너무 무거웠다”며 신에게 투정할 자격은 있는 왕이었다. 한때 포로가 됐을 망정 전장에서는 늘 선두에서 병사들을 지휘해 백성들은 그를 `기사왕'으로 불렀다. 국익을 위해서는 이슬람 국가에 머리를 숙이는 수모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래서 강대국에 둘러싸인 사면초가의 위기 국면에서 프랑스를 큰 손상없이 유지한 그의 업적은 후대에서 평가를 받는다.

자신에게 내려진 왕관이 너무 무거웠다는 그의 마지막 말은 절대 권력의 단맛보다, 그 단맛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의 쓴맛이 더 진했다는 고백이었을 것이다. 한편으론 권리보다 의무에 충실하고자 했다는 자신의 통치 여정을 우회적으로 과시했던 셀프 찬사이기도 할 터이다. 어쨌든 나는 프랑수아의 이 말을 4년 후 임기를 끝낸 윤석열 대통령으로부터 듣기를 바란다.

윤 대통령이 취임한 지 6개월이 지났다. 그 6개월간의 성적표는 꾸준히 지속되는 저조한 국정지지율이 대변한다. 바람 잘날 없을 정도로 논란과 불화와 충돌이 반복된 혼돈의 시간이었다. 대통령 스스로 여당 대표 축출 과정에서 드러낸 `내부 총질' 문자 논란에 비속어 논란, 최근에는 측근들이 국감장에서 주고받은 `웃기고 있네' 필담 논란에 이르기까지 정쟁의 도마에 올랐던 사달들을 꼽자면 열손가락도 모자랄 판이다. 그리고 적지않은 국민이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에게 무수한 정쟁거리 양산에 대한 방조내지는 공조의 책임을 묻는다. 최근에는 대통령이 해외 순방에 나서며 특정 언론사의 전용기 탑승을 배제해 언론탄압 비판까지 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 전근대적 행태에 대한 해명이 국익이었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가톨릭 국가 군주인 프랑수아는 철천지 원수였던 회교도 국가 오스만에 허리를 굽히고 들어가 손을 잡았다. 국가 지도자가 `국익을 위해서'라는 명분을 내걸려면 자존심을 유보하고 내린 이 정도의 용단 정도는 돼야 한다. 프랑수아는 배후에서 메시지를 전해 전선을 간접 지휘하지도 않았다. 직접 선두에 서서 결과에 대한 책임을 온전히 자신에게 돌렸다.

프랑수아 치하의 프랑스보다 훨씬 절박한 상황에 처한 지금 대한민국에서 국정 운영에 집중돼야 할 에너지가 새로운 논란을 생산하고 방어하는 무의미한 작업에 낭비되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다. 대통령이 권력의 행사에만 골몰할 뿐 책임과 의무에는 소홀한 것 아니냐는 의문도 도처에서 제기되고 있다. 대통령이 지금부터는 국가와 국민의 통치자가 아니라 봉사자로서의 책무에 집중했으면 좋겠다. 왕관의 무게를 곱씹으라는 얘기다. 프랑수아 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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