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생계비 유감(有感)
최저생계비 유감(有感)
  • 충청타임즈
  • 승인 2007.09.06 2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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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칼럼
이 태 수 <꽃동네현도사회복지대학교 교수>

내년도 최저생계비 수준이 최근 보건복지부 장관 고시의 형태로 공포됐다. 이 과정에서 우리나라의 빈곤정책의 현 수준에 대한 부끄러운 자화상이 또 한번 확인됐기에 씁쓸함을 감출 길 없다.

우리나라 빈곤정책의 기반이 되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제2조에는 최저생계비에 대해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국민이 건강하고 문화적인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소요되는 최소한의 비용'이라고. 그러나 현실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되는 최저생계비는 이런 기준과는 거리가 멀다.

최저생계비를 보여주는 구체적인 수치가 맞는지 아닌 지를 이 짧은 지면에서 논박의 대상으로 삼고 싶지는 않다. 대신 에둘러 이야기해 보기로 하자. 가장 결정적인 근거로 삼을 수 있는 것은 이 엄청난 양극화 시대에 최저생계비 이하로써 정부로부터 기초생활수급 대상자로 분류된 이들의 규모가 요지부동이라는 점이다. 중산층이 와해되고 서민생계가 붕괴되며, 소득의 상위계층과 하위계층의 소득차이가 점점 우심해진다고 정부 스스로 인정한 바라서, 임기말임에도 불구하고 '양극화 및 민생대책위원회'라는 대통령자문기구를 새로이 만들 정도였다. 그런데 참여정부 임기 내내 수급대상자는 160만명 선을 넘지 않고 고정되어 있었다. 또 다른 근거로는 최저생계비가 도시근로자의 평균소득에 대비해 차지하는 비중이 계속 하락해 2005년대는 32% 수준에 이르게 됐다는 점이다.

최저생계비가 이렇게 저수준으로 묶이게 되는 것은 그 결정 통로를 볼 때 어느정도 예상되는 바이다.

보건복지부 장관이 위원장인 중앙생활보장위원회는 13인으로 구성돼 있는데, 부처를 대표하는 차관들이 5인을 차지하고 있고, 국책연구기관 종사자나 출신자 등을 포함하면 이미 과반수를 언제나 확보한 셈이 된다. 따라서 형식적으로는 정부 당국과 전문가들, 그리고 공익을 대표하는 이들이 모여 민주적인 의사결정과정을 통해 해마다 최저생계비가 정해진다지만, 언제나 정부의 예산소요에 대한 일정한 통제와 빈곤층의 도덕적 해이 방지라는 필요성 때문에 결국은 정부 의지대로 결정이 되는 형국을 피할 수 없게 돼 있다.

올해는 3년 주기로 최저생계비 실제계측이 이뤄진 해라서 이런 객관적 자료를 토대로 내년 수준을 결정할 수 있는 호기임에도 불구하고 구성항목이나 적용할 물가 상승률을 둘러싸고 수준을 낮추려는 정부 측과 반대입장을 지닌 전문가와 시민단체 대표들 사이의 적지않은 논쟁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결과는 역시 정부안대로 통과됐고 예산 상에 큰 무리를 주지 않은 선에서 마무리되었다. 그 예산상의 고려로 인해 서구 선진국가들이 공공부조 예산으로 국내총생산의 1.5%정도를 사용하는 것에 비해 우리는 0.6%에 그치는 한심함을 지속하게 될 것이다. '가난은 나라님도 구제 못한다'는 세간에서 통용되는 말은 사실 오늘날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봉건시대 낮은 농업생산성으로 인해 국부의 총량이 적었을 때 해당되었던 이 말이 오늘날처럼 대량생산 시대, 부와 사치가 극성을 부리는 시대에는 가난이야말로 부의 편중 현상을 사회가 제어하지 못한 결과이므로 당연히 나라가 구제해야 하는 일이다.

21세기 문명시대에 아직도 극심한 빈곤을 벗지 못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어두운 한 부분이 예의 '예산의 제약'이란 관료들의 통념에 갇혀 가실 줄 모른다. 최저생계비 결정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요구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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