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우리에게
우리가 우리에게
  •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 승인 2022.11.09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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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원의 목요편지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나도 아니고 너도 아닌 우리.

일상 언어 중에 듣기도 좋고 말하기도 좋은 그러면서 서로에게 힘이 되는 좋은 말이 바로 ‘우리’입니다.

외롭지 않다는 더불어 산다는 의미가 담겨있어서 좋고, 일체감과 결속감과 사랑이 담겨있어서 좋습니다.

그래서인지 한국인들은 ‘우리’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삽니다.

우리나라, 우리 민족, 우리 문화, 우리 동네, 우리 회사, 우리 학교, 우리 집이라 하고, 심지어 독차지하는 자신의 남편, 아내, 애인도 우리 남편, 우리 아내, 우리 애인이라고 부르는 참 야릇한 민족입니다.

이처럼 소속감과 주인의식을 은연중에 나타낼 때 대상 앞에 ‘우리’를 습관처럼 무심코 붙여 씁니다.

‘우리’의 사전적 의미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말하는 이가 자기와 듣는 이 또는 자기와 듣는 이를 포함한 여러 사람을 가리키는 ‘우리’와, 어떤 대상이 자기와 친밀한 관계임을 나타내는 ‘우리’가 있다고.

아무튼 우리가 우리여서 참 좋습니다.

‘우리’가 있어 고해라 일컫는 세상살이와 인생살이가 아름답고 정겹습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아니 지난날을 돌아보니 ‘우리’는 우연이 아닌 필연이었고 삶의 원천이었습니다.

전생에 질긴 인연이 있어서, 하늘의 점지가 있어서 우리가 되었고 그렇게 우리로 한세상 어우렁더우렁 살다 갑니다.

우리나라도, 우리 가족도, 우리 친구도, 우리 시대도 다 그렇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남이 아닌 운명공동체였고, 연대와 상생과 공영의 주체였고 협력자였습니다.

험한 세상에 그렇게 서로 돕고 기댈 수 있는 우리가 있다는 건 큰 축복입니다.

문득 ‘우리는 빛이 없는 어둠 속에서도 찾을 수 있는, 우리는 아주 작은 몸짓 하나라도 느낄 수 있는···· 수없이 많은 날들을 우리는 함께 지냈다. 생명처럼 소중한 빛을 함께 지녔다’라는 송창식의 ‘우리는’이라는 노래가 뇌리를 스칩니다.

‘밤하늘에 별 만큼이나 수많았던 우리의 이야기들’이란 노랫말과 ‘우리가 저마다 힘에 겨운 인생의 무게로 넘어질 때 그 순간이 바로 우리들의 사랑이 필요한 거죠’란 예쁜 노래도 생각납니다.

그랬습니다. 우리 모두는 지난날 그런 우리들이 있어서 오늘의 내가 있고, 내일을 기약하고 삽니다.

그런데 자꾸만 가슴이 시려옵니다. 남이 되어버린 우리들이 적잖이 있어서 입니다.

사소한 오해와 불찰로 관계가 틀어지고 멀어진 안타까움과 회한 때문입니다.

피를 나눈 우리였는데, 사랑을 나눈 우리였는데, 동지애를 나눈 우리였는데 말입니다.

그런 살가운 우리였기에 그래도 되는 줄 알았고, 그 정도는 이해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내가 먼저 좋은 우리가 되려하기보다 네가 먼저 좋은 우리가 되기를 바랐던 용렬함의 발로였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세월도 우리를 갈라놓고, 형편과 처지도 우리를 좀먹었습니다.

부모님 사별이 그랬고 직장친구, 술친구가 그랬고, 여친이 그랬습니다.

그렇듯 영원한 우리는 없었습니다.

죽자 살자 했던 연인들이 남이 되고 철천지원수가 되는 걸 보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하여 그 때 잘할 걸, 참을 걸, 베풀 걸 하는 때늦은 후회로 가슴앓이를 합니다.

이처럼 우리가 잘 되어야 나도 잘 되고, 우리가 행복해야 나도 행복해집니다.

그런 잣대로 지금 내 곁에 있는 우리를 헤아려봅니다.

가족과 서사모, 섬사모, 별회와 이런저런 인연줄모임 들을.

사랑 먹고 사는 우리인데, 관심과 배려의 옷을 입고 사는 우리인데 과연 그런 가를.

우리가 우리에게 타이르듯 이릅니다. 그리 살라고.

나도 아니고 끼리끼리도 아닌 진정 우리로.

/시인·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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