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어빵
붕어빵
  • 정명숙 청주문인협회장·수필가
  • 승인 2022.11.07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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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정명숙 청주문인협회장·수필가
정명숙 청주문인협회장·수필가

 

가을과 겨울이 뒤섞이는 혼돈의 계절이다. 한쪽에선 화려함이, 다른 한쪽에선 쓸쓸함이 배어 나오는 11월의 초입에 어느 부부와 마주쳤다. 깊은 눈망울은 슬프고 햇빛에 그을린 얼굴과 행색은 초라하다. 한 발짝 떨어진 붕어빵 포장 손수레를 앞에 두고 살구나무 길 작은 나무 의자에 자리를 좁혀 앉아 있는 부부는 행인들의 눈치를 보고 있다. 초조한 눈빛과 달리 포장마차 앞에 멈춰서는 이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며칠 전이다. 점심 약속이 있어 식당 주차장으로 진입하려다 도로 경계석과 부딪혔다. 차 밑에서 뭔가 부서졌는지 소리도 나고 계기판에는 노란 경고문이 올라왔다. 서비스센터에서는 별일 아니란다. 부서진 부분만 교체하고 시스템만 점검하면 된단다. 부품이 없어 주문하면 시간이 소요된다고 한다. 수리하는 동안 어디서 시간을 소비해야 할까. 잠시 주춤거리다 밖으로 나왔다.

이곳은 예전에 살던 동네다. 부부의 초조한 모습을 뒤로하고 살구나무 거리를 걷기 시작했다. 익숙한 길은 홀로 걸어도 어색하지 않다. 마른 낙엽은 밟을 때마다 바스락거리며 추억을 소환한다. 햇살은 따듯해도 바람이 차다. 스치는 바람에도 마른 잎이 우수수 떨어져 스산하기는 해도 이곳에 살면서 경험했던 많은 일은 단풍처럼 고운 빛으로 살아난다. 수 없이 이 길을 걸으며 감성을 충전시켰다. 그리고 삶의 방향을 전환했다. 힘들 때 손을 잡아주고 내 안의 자아를 발전시켜준 그때의 인연은 아직도 푸르다.

나는 쫄쫄 굶는 애옥한 삶을 살아보지 않아선지 먹고사는 문제보다는 내 안의 채워지지 않는 그 무엇과 가지 못한 길을 기웃거리고 그리워했다. 그늘진 현실 속에 있어도 늘 소녀처럼 꿈을 꾸고 무지개를 잡으려 했다. 이 길을 수 없이 걸으며 갈등하고 고민했지만 꿈을 꿈으로만 남겨두지 않고 현실로 만들었다. 진정한 성취를 맛보고 삶을 반전시켰다. 내 삶이 가장 뜨겁게 지나간 자리다. 그런데 오늘은 이런 생각을 한다. 이게 내가 진정 꿈꾸던 삶이었나, 난 왜 이 길을 가고 있는 걸까. 누군가에게 이런 고민을 털어놓으면 배부른 소리라고, 지금 하는 일이나 열심히 하라는 핀잔을 들을 것이다.

나무 의자에 앉아 붕어빵을 사주길 간절하게 바라는 부부에게도 꿈은 있을 터다. 거리에서 하는 장사보다는 비바람과 추위를 견딜 수 있는 가게 하나 마련하는 게 꿈일까. 가을이 내려앉은 만추의 농익은 자태는 그저 풍경일 뿐이고 겨울이 가깝다는 걱정이 먼저이리라.

정비소로 돌아가는 길에 부부를 앞에 두고 잠시 멈칫거렸다. 천원에 두 개짜리 붕어빵을 구워 파는 저 부부는 오가는 행인의 발걸음 소리에 귀를 세우고 있다. 삶을 이어가야 하는 절실함이다. 애처로운 눈동자는 천변을 걷는 내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추억을 들추면서도 마음이 불편했다. 바라보고 있는 지금은 더 불편하다. 가을이면 밀려오는 허무함은 배부른 사치였나. 된추위는 가까이 오는데 저 부부는 얼마나 몸이 달 것인가.

내가 붕어빵을 한 봉지 사들고 자리를 뜨자 부부는 다시 아까의 모습 그대로 나무 의자에 앉아 정물이 된다. 11월, 쓸쓸한 달이다.

이 세상에는 아쉬움을 품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인가 보다.

찬 바람에 날리는 낙엽을 밝으며 몸보다 마음이 먼저 감기에 걸린 것처럼 마른기침이 멈추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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