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꼬와 대운하
물꼬와 대운하
  • 충청타임즈
  • 승인 2007.09.05 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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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 청 논 단
김 성 식 <본보 생태전문기자>

이 땅의 조상들은 농사철 비가오면 으레 하는 일이 있었다. 물꼬를 보는 일이었다.

곡식이 영글 무렵엔 더욱 더 그랬다. 행여 그 무렵에 비가 자주 오면 아예 그 옆에서 살았다. 그래서 '하지를 지나면 발을 물꼬에 담그고 잔다'는 속담까지 생겼다. 벼농사가 모든 농사를 대변하던 시절 그야말로 벼 농사의 흥과 망은 백성들의 생과 사를 가르는 문제였다.

햇과일이 막 나오고 벼가 알곡을 머금기 시작하는 유두날이 되면 충청도, 특히 충북지역에선 물꼬고사까지 지냈다. 부침개에 갓 나온 과일들을 물꼬에 차려놓고 정성껏 풍년을 기원하던 게 물꼬고사다.

법 없이도 살아가던 그 옛날 이웃사촌, 아니 친 사촌끼리도 걸핏하면 말다툼 하게 한 것이 물꼬다. 평소엔 그쪽 없인 못산다고 할 만큼 마냥 친하다가도 어느 한쪽이 물꼬를 잘못 막았든지, 잘못 튼 경우엔 언제 그랬냐는 듯 곧바로 삿대질에다 멱살잡이 하기가 일쑤였다. 그렇다고 서로 원수가 될 정도로 싸웠던 건 아니지만, 그래도 서로간에 서운한 감정을 곧잘 내비치게 했던 게 바로 물꼬다.

요즘 한반도엔 온통 비 얘기다. 해도 해도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내리부으니 만나는 사람마다 비 얘기다. 농촌 역시도 마찬가지다.

예전 같으면 농민 모두가 물꼬 옆에 붙어살아야 할 판이다. 예부터 가을농사는 하늘이 지어준다고 했듯이 요즘 내리는 비는 농사에 도움은 커녕 잘 된 농사마저 망쳐버리는 쓸데 없는 비다. 자연에서 벌어지는 일을 너무 통속적으로 폄하하는 인간 이기주의적 표현인지는 몰라도, 속수무책으로 무너져 내리는 가슴을 그저 한숨으로 달래고 있는 농민들이 너무 안쓰러워 하는 말이다.

농법이 바뀌고 물에 대한 관념도 변하고 물꼬의 기능이 변한 탓일까. 아니면 쌀값도 싼데 그까짓 벼농사 쯤이야 하는 것일까.

물을 중시하던 시절의 물꼬란 그것을 제때 트고 막는 기술이 곧 농사의 큰 비결이었는데 지금의 농심은 그게 아니다. 그만큼 세상은 변해 있다.

계속되는 비 예보로 온 나라가 어수선한 가운데 한쪽에선 '강물 가지고 장난() 말라' 야단이다.

다름 아닌 이명박 대선후보의 경부대운하 프로젝트를 반대하는 수중시위가 충북땅 달천강에서 시작된 것이다. 환경련 회원들이 주축이된 시위대는 "경부운하 건설 계획은 그 자체가 백두대간을 두동강내는 반생태적 발상"이라며 "공약을 포기하지 않을 경우 배수의 진을 치고 온몸으로 저지하겠다"며 강력한 의지를 표명하고 있다.

이들의 주장을 꼭 상기하지 않아도 우리나라의 지리·지정학상 백두대간과 그를 중심으로 나뉘어진 물길은 온 국토, 온 국민, 온 생태계를 아우르는

생명줄이라고 할 만큼 중요한 요소다. 특히 백두대간을 중심으로 서쪽과 동쪽, 남쪽으로 서로 갈라져 흐르는 우리나라의 강 수계는 이른바 서한 아지역과 동북한 아지역, 남한 아지역이라는 세 개의 독특한 민물고기 분포구계를 구성하고 있다. 한강의 어류상이 양양 남대천과 다르고 낙동강과 다른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그런데 이 중 필요한 물줄기를 이어 운하로 이용한다 하니 한반도 생태계의 미래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예부터 물을 다스리는 치수(治水)는 산을 다스리는 치산(治山)과 함께 나라 운영의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다. 그래서 치수를 경국지대도(經國之大道)라 하여 국가운영의 제일과제로 삼고 각 시대마다 나라님들이 물 다스리는 일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비록 나라님뿐만 아니라 백성들도 소중히 물을 다뤄왔다. 그를 대변하는 게 바로 물꼬다.

민초들은 물꼬를 잘 못 다루면 이웃과 마찰을 일으키거나 한해 농사를 그르쳤기에 신중히 다루었고, 나라님들은 물을 잘못 다스리면 대재앙이 올 것을 우려해 더욱더 치수에 만전을 기했다.

물꼬는 다름 아닌 '물의 시작이요, 방향'이라 할 수 있다. 잘 못 틀어도 시빗거리요 잘 틀어도 아전인수(我田引水)란 비난을 받기 십상이다.

하늘에선 줄곧 빗물을 퍼붓고 항간에선 강과 관련된 '말'들이 무성한 요즘, 우리 조상들이 어떤 방법으로 슬기롭게 물꼬를 틀고 치수했는지 한번쯤 생각해볼 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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