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속을 심판하겠다는 마속
마속을 심판하겠다는 마속
  • 권혁두 기자
  • 승인 2022.11.06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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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권혁두 국장
권혁두 국장

 

마속(馬謖)은 삼국지에 등장하는 촉나라 장수이다. 국정을 총괄하는 2인자 제갈공명의 총애를 받던 명장이다. 그러나 그는 위나라와의 전쟁에서 공명의 명령에 반하는 어리석은 작전을 펼쳤다가 요충지를 빼앗기는 결정적 과오를 범한다. 격노한 공명은 군율을 바로잡기 위해 불가피하다며 그에게 참수형을 내리고 눈물을 훔치며 집행한다. 여기서 눈물을 흘리며 마속의 목을 벤다는 `읍참마속'이라는 성어가 탄생했다. 지금도 최측근을 잘라내는 아픔을 감내하면서 책임을 엄중히 묻는다는 의미로 자주 쓰인다.

최근에는 윤희근 경찰청장 입에서 이 말이 나왔다. 이태원 참사가 벌어지는 과정에서 경찰의 총체적 무능이 드러난 후 국민에게 사과하면서다.

그는 “사고 직전 현장의 심각성을 알리는 112신고가 다수 있었으나 경찰 대응이 미흡했다”며 “읍참마속의 각오로 진상과 책임 규명에 나서겠다”고 했다. 자못 결연한 의지가 엿보이긴 했지만 한편으론 마속이 마속을 베겠다고 나선 기이한 장면이기도 했다.

경찰 총수는 누구보다 먼저 이번 참변에 대해 엄중한 책임을 추궁받아야 할 장본인이다. 그런 그가 제갈공명 흉내를 내며 아래의 책임을 엄히 다스리겠다고 나섰으니 하는 말이다.

윤 청장은 사고 당일 개인적 행적부터가 황당하다. 그는 이태원에서 참극이 시작된 지 두시간 가까이 지난 자정 무렵에야 사고를 인지했다.

등산을 다녀와 밤 11시쯤 잠들어 경찰청 상황담당관이 보낸 문자도 전화도 받지 못했다고 한다. 치안 총수가 대통령보다 1시간 이상이나 늦게 대형사고를 보고받는 나라가 또 어디있을까. 자리를 지키지 않아 늑장보고를 받기는 서울청장도, 용산서장도 마찬가지였다. 그 마비된 지휘라인의 정점에 윤 청장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는 부하의 책임을 물어야 할 공명이 아니라 무릎꿇고 처분을 기다려야 할 마속일 뿐이다.

당장 그날 자신의 석연찮은 행적부터 조사받아야 할 사람이 조사의 주체로 나섰으니 이런 어불성설이 없다. 윤 청장은 물론 경찰도 이번 조사와 수사에서 손을 떼는 게 맞다. 이태원 파출소와 용산서에서는 핼로윈 행사를 앞두고 인파가 몰려 사고가 우려된다는 보고를 상부에 누차 올렸지만 묵살됐다고 한다. 경찰 수뇌부가 대거 직무유기 의혹을 받는 상황에서 사고를 경고한 내부 보고들이 묵살된 경위를 경찰 스스로 밝혀내기란 쉽지않다. 벌써부터 압수수색 대상에서 용산서장실이 제외되는 등 셀프수사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읍참마속은 때로 책임을 아랫 사람들에게 돌리려는 비열한 목적에 동원되기도 하는 말이다. 공명도 측근인 마속을 가혹하게 처벌함으로써 `무능한 장수를 기용해 전쟁을 망쳤다'는 자신에게 돌아올 비난을 차단했다. 전화도 문자도 받지않고 잠들었다가 2시간이나 지나서야 사고를 보고받고 허둥지둥 현장으로 달려나왔던 치안 총수가 언급한 읍참마속에서도 이런 교묘한 의도가 읽힌다.

지금 읍참마속의 의지는 경찰청장이 아니라 대통령이 다져야 한다. 철저하게 무너진 재난 대응체계에 대한 조사가 진행되면 도처에서 마속이 발견될 공산이 높다.

이미 공명을 사칭한 마속까지 등장한 판이다. 대통령이 특검을 지시해 마속이 마속을 조사하는 모순부터 바로잡았으면 좋겠다.

그리고는 “과오가 드러나면 눈물을 머금고 수족도 자르겠다”는 각오를 피력했으면 한다. 그 눈물이 156명의 희생자와 유족의 눈물에 비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사고 직후 “경찰과 소방력을 미리 배치했다고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며 경찰 주무장관으로서 책무를 걷어찬 이상민 행안부장관도 예외가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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