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을 찾아주세요
이름을 찾아주세요
  • 심진규 진천 상신초 교사(동화작가)
  • 승인 2022.11.06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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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심진규 진천 상신초 교사(동화작가)
심진규 진천 상신초 교사(동화작가)

 

신문에 싣기 적당한 이야기인지 모르겠지만 오늘은 교실에서 학생들과 수업했던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

얼마 전, 학생들과 《오, 미자!》라는 그림책으로 공부했어요. 다섯 가지 맛이 나는 열매, 오미자. 사람마다 맛도 다르게 느낀다고 하지요. 그림책에는 여성 노동자 다섯 명이 나와요. 대역 배우, 청소 노동자, 택배 노동자, 전기 설비 노동자, 이삿짐센터 노동자가 나와요. 다섯 명 이름이 모두 미자라서 책 제목이 《오, 미자!》입니다.

그들이 일하며 느끼는 여러 상황이 다섯 가지 맛으로 표현됩니다. 보람을 느끼는 단맛도 있지만, 손가락질받거나 소외당한다고 느낄 때는 쓴맛을 느끼기도 합니다.

건물을 청소하는 노동자가 승강기에 타려는데 승강기 문에 작은 메모가 붙어있어요. 외부인이나 청소 근로자는 탑승을 자제하고 계단을 이용하라는 메모입니다.

일이 더디다며 “빨리빨리”를 외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묵묵히 자기 일을 하는 다섯 명의 미자씨. 간혹 다른 사람들이 보내는 따뜻한 말과 행동에 보람을 느끼는 미자씨 모습도 나옵니다.

미자씨는 그림책 안에만 있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학생들과 우리 사회에 있는 더 많은 미자씨를 찾아 배움의 여행을 떠나보았어요.

《오, 미자!》 읽고 나서 그림책에 등장하는 다섯 명의 미자씨 직업은 무엇일지 적어보는 수업을 했어요.

대역 배우인 미자씨를 영화배우로 적는 아이들이 많았어요. 대역 배우는 실제 영화에서 배우가 하기 힘든 역할을 대신하는 일을 하며 영화 화면에는 다른 사람으로 나온다고 설명해주었어요.

대역 배우가 있다는 사실을 잘 몰랐던 아이들이 억울하겠다고 이야기하네요. 연기는 내가 했는데 다른 사람 얼굴이 나온다면 충분히 그럴 거예요.

그런데 더 억울한 일이 있어요. 직업을 지칭할 마땅한 이름이 없는 미자씨도 있어요. 이삿짐 정리하는 노동자를 보고 아이들 대부분이 `이삿짐센터'라고 적었어요. 사람이 `센터'는 아닐 텐데 말입니다.

교사인 저도 딱히 떠오르는 이름이 없어요. 이사를 해 본 사람이라면 알 것입니다. 그분들의 노동이 없다면 이사할 수 없다는 것을 말이지요. 그런데 그를 지칭할 적당한 이름이 없다는 사실에 놀랐어요.

우리 사회는 `노동'이라는 말을 유난히 꺼리는 듯합니다.

예전에 한 매체에서 강도 공개수배 전단을 본 일이 있어요. 수배자 인상착의에 `노동자풍 차림'이라는 말이 있었지요. 노동자를 허름하고 지저분한 옷을 입은 사람으로 우리 사회가 인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단편적인 예입니다. 사회가 이렇게 노동을 천시하는 현실에서 우리 학생들은 노동을 어떻게 생각할까요?

고(故) 노회찬 전 의원의 당 대표 수락 연설을 통해 널리 알려진 6411번 버스가 있습니다.

노회찬 전 의원은 새벽 첫차를 타고 빌딩 숲으로 출근하는 청소 노동자 이야기를 하며 눈시울을 붉힙니다.

그분들은 빌딩에서 일하는 다른 사람들이 출근하기 전에 청소하고 사라집니다. 그들에겐 이름만 없는 것이 아니라 존재 자체가 없습니다. 그들의 노동으로 이 사회가 유지되는데 그들은 왜 늘 그림자처럼 어두운 곳에 있어야 할까요?

그들의 노동이 정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왜 그들에겐 명확한 이름이 없는지 우리 사회 모두가 고민해보고 그들의 이름을 찾아주는 일부터 해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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