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 같은 말
이슬 같은 말
  • 김일복 시인
  • 승인 2022.11.06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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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엿보기
김일복 시인
김일복 시인

 

백로(白露)의 시기다. 뜨거웠던 여름은 지나가고 청순하고 시원한 바람이 분다. 아침이슬은 돌고 돌아 방울방울 파란 가지 끝에 맺혀있다. 파란 잎끝에 매달린 이슬은 영원히 시들지 않을 것처럼 영롱하고 수려했다. 
 
“얼른 일어나서 밥 먹고 학교 가야지.” 
“국 식겠다. 얼른 일어나렴.” 
 
맛깔스러운 아침에 어머니가 맨 처음 건네는 말씀이다. 그리고 저녁에서야 어머니를 볼 수 있었다. 어머니의 언어는 늘 낮은 목소리였고, 그것도 하루에 몇 마디가 다였다. 어떤 일이나 질문에 대한 대답은 늘 따뜻한 미소였다. 말하지 않아도 어떤 의미에 대해 눈치채야 했고, 말하지 않음으로 말의 끝을 상상해야 했다. 평소 말씀이 없으신 어머니의 가르침이다.
요즈음 사람들은 작품 쓰면서 글 내용 끝에 ‘고맙습니다. 덕분입니다. 사랑합니다.’ 그리고 ‘손 모음 절’이란 표현까지 적기도 한다. ‘손 모음 절’이란 양손을 모아 절할 때처럼 기도하는 마음을 드린다는 의미인 것 같다. 말에는 마음이 담긴다. 내가 하는 말에도 마음이 담겼으면 좋겠다. ‘고맙습니다.’라는 표현은 이왕이면 고양된 소리로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라고 힘껏 전달되면 좋겠다. 또한 ‘덕분입니다.’라고 말할 때는 더욱 낮은 목소리로 허리를 굽히듯 겸손함이 전달되고, ‘사랑합니다.’라는 말은 서로의 가슴에 콩닥콩닥 뛰는 설렘이 도착하면 좋겠다. 
어릴 적 한밤중에 소변을 보러 대문 밖에 나가 밤하늘을 보면, 소리 없이 찬 이슬이 내리는 걸 느꼈다. 그때마다 내 등 뒤에 무서움도 내리고 이슬비도 내려 일부러 노래를 부르거나 어깨를 툭툭 치곤했다. 빨리 아침이 오기를 기다렸다. 아침에 내리는 이슬의 양은 얼마 안되지만 보이지 않는 미생물이나 식물들에 생명수가 된다는 것을 나중에 공부하면서 알게 되었다. 
아침 햇살에 비치는 이슬은 신비스럽고 인간사가 들어 있는 맑고 깨끗한 옥구슬 같다. 푸른 잎 사이로 푸른 나비가 나풀나풀 날아 옥구슬에 앉을 기세다. 마치 이슬이 날아다니고 굴러다니며 세상을 촉촉하게 하는 듯했다. 이슬은 아침이 되면 바람이 씻겨 놓은 언어로 하루를 시작한다. 이는 또다시 감동으로 이어진다. 감동은 우리 삶의 변화를 준다. 세상사, 굳이 말하지 않아도 따뜻한 의미와 사랑이 전달되면 모든 게 통하는 법이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관계를 맺을 때 언어의 영향력은 7% 불과하다고 한다. 나머지는 말하는 표정이나 말투에서 의도나 마음이 전달된다고 하니, 이슬 같은 말은 더더욱 필요하겠다. 우리 모두 듣기 좋은 소리를 하고, 듣고 싶은 말을 해 주고, 따스한 온도가 담긴 언어로 감싸줘야겠다. 누군가 그랬다. ‘신적인 것은 부드럽게 말하는 것이고, 침묵하는 것은 자신을 만나고 진리를 발견하는 참된 수행이다.’라고, 신비스럽고 이슬 같은 말 한마디가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준다. 
말에는 힘이 있다. 사랑을 견고히 만들어주기도 하지만, 다른 사람의 마음을 할퀴기도 한다. 칼의 상처는 아물어도 말로 받은 상처는 아물지 않는다는 몽골 속담이 있다. 우리는 종종 의도와는 상관없이 다른 사람에게 말로 상처를 줄 때가 있다. 가령, 친구의 고민을 듣고 어떤 일이든 당장 해결해 주고 싶겠지만, 상대의 마음이 어떤지 주변 상황은 좋은지 등을 고려하지 않고, 그저 마음에 없는 상투적인 말로 위로하면 위로가 될까? 신중히 그 사람이 소화할 수 있는 말이 필요하겠다.
나의 언어 표현 중에 증오와 질투가 섞여 있지는 않은지, 상대와 비교하는 말을 하지는 않는지, 내 판단만 믿고 지시적이고 가르치려 하는지, 부정적인 언어를 많이 하는지 나의 언어 습관에 대해 곱씹어 본다. 말이란 소중한 인연이 되어준다. 당당하게 진실한 마음을 담아 예쁜 표정으로 정확하게 말하면, 이슬은 잎줄기를 타고 상대의 심장에 차곡차곡 잘 쌓일 것이다. 변화에 대한 믿음 갖고 마음으로 대하며 눈으로 말하자.
 
“밥은 먹고 다녀라, 아픈 데는 없니? 최선을 다하면 된 거야! 
포기만 하지 마라. 너만 괜찮으면 돼, 부모 걱정은 하지 마라.”
  
어머니의 사랑스러운 말씀이 더욱 그리워지는 가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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