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절 인연
시절 인연
  • 방석영 무심고전인문학회장
  • 승인 2022.11.03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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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방석영 무심고전인문학회장
방석영 무심고전인문학회장

 

시월의 마지막 밤을 보내고 11월을 맞은 지 몇 날이 지났다. 세월이 유수와 같고 쏜 살과 같이 흘러감을 저절로 실감하게 된다. 입동을 코앞에 두고 가을이 절정에 이른 까닭인지, 요즘은 아침저녁으로 제법 한기를 느끼는 쌀쌀한 날씨가 느껴진다. 여름과 초가을 내내 즐겨 입던 반 팔 티와 반바지 등 가벼운 옷들과는 이제 이별할 때가 온 듯하다. 소중하고 귀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한여름과 초겨울 내내 우리와 한 몸이 돼서 살았던 소중하고 귀중한 존재인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러나 날씨가 차지면서 시절 인연이 다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반 팔 티와 반바지 등은 우리 곁을 떠나 옷장 속으로 떠나는 이별을 맞이해야 한다. 이별이라고 표현했지만, 전혀 슬프지도 아쉽지도 않은 이별로, 물이 흘러가듯 자연스러운 진행이고 결과다.

이 세상의 모든 일은 시절 인연이 맞아야 한다. 물론 현대 과학이 발달함에 따라, 세월의 흐름을 어느 정도 역행하거나 다소 무관한 경우들도 있다. 그래도 어느 정도는 여전히 세월의 흐름에 따른 시절 인연을 이어가는 것이 이 세상의 현주소다.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로 이뤄진 육신을 가진 인간은 누구나 무더운 한여름에는 시원함을 원하고, 추운 겨울에는 따듯한 온기를 원하는 것은 동서고금을 관통하는 진리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맥락에서 한여름 무더위에는 시원한 음식을 먹으면서 덥지 않게 지내는 것이 지혜다. 또 한겨울 추위 속에서는 따듯한 음식과 오리털 파카를 입으면서 춥지 않게 지내는 것이 삶의 지혜며, 그렇게 사는 것이야말로 가장 기본적인 생존 요건이고, 잘 사는 것이라는 것을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앞서 시절 인연을 언급하면서는 계절의 흐름인 시간만 언급했지만, 시절 인연 속에는 공간도 포함된다. 이 세상이 시간과 공간으로 이뤄진 가운데, 시간이 흘러가는 동시에 이곳과 저곳으로 이동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삶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맑은 물을 뜨기 위해선 우물가를 찾아가야 하고, 쌀을 씻어 밥을 하기 위해선 화장실이 아니라 부엌이란 공간을 찾는 것이 보다 편안하고 효율적이다. 물론 겨울에는 강이나 바다로 물놀이를 하러 가기보다는 눈썰매장이나 스키장 스케이트장을 찾는 것이 자연스럽고, 여름에는 스키를 타러 스키장을 찾는 것보다는 강이나 바다로 물놀이를 가거나 수영장을 찾는 것이 자연스러운데, 이는 시간과 공간을 다 아우르는 삶의 지혜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시간과 공간을 가장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점하는 것이 지혜로운 삶이고 성공적인 인생을 앞당기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전제 조건이다. 이 때문에 공자님은 인생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가장 요긴한 가르침으로, `시중(時中)을 역설하셨다. 시간의 흐름에 딱 맞게 적중해야 한다는 의미로 시절 인연의 중요성 중에서도 시간을 강조한 가르침이다. 어린 시절에는 앞당겨 어른 흉내를 낼 필요가 없고, 노인이 돼서는 철부지 세 살 어린아이의 단편적 생각을 넘어서야 함은 당연하다. 장엄하게 떠오르는 태양의 생명력을 느끼기 위해선 아침 해돋이 시간을 활용해야 하고, 황홀한 노을의 고요함을 체험하려면 당연히 저녁 일몰(日沒) 시간까지 기다릴 줄 아는 것이 '시중`의 지혜다.

천년 만 년 푸를 것 같던 신록의 잎새들 / 푸르름으로 온통 세상을 뒤덮던 나날들 / 찬 바람 불고 가을 깊어지니 미련 없이 떠나네 / 시절 인연 따라 아쉬움 망설임 두려움도 없이/ 투두둑 찬바람에 온몸을 내맡기는 조락(凋落)의 춤사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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