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에서 삶을 배운다
자연에서 삶을 배운다
  • 김은혜 수필가
  • 승인 2022.11.03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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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양철기 원남초 교장(교육심리 박사)
김은혜 수필가 

 

시각장애인은 보살피는 비장애인의 손길이 못마땅해 매사가 짜증이다. 밤낮으로 껌딱지처럼 붙어 손발이 되어 살아가는 비장애인의 일상을 들여다보자. 느지막이 잠두봉 산책길을 걸으며 비장애인은 자신에게 이렇게 읊조린다. 저런 모습이 어디 한두 번인가. 그러려니 해야지 오죽하면 저럴까. 그렇게 마음을 다잡다가도 장애인으로 살아감이 내 탓도 아닌데 함께 살아감을 고마워해야지. 나는 집을 나서도 마음 한 자락은 집에 놓고 몸만 나오련만.

비장애인은 환경이 바뀌면 생각도 바뀐다는 걸 안다. 하여 마음이 어지러우면 언제고 자연과 대화하려고 집을 나선다. 자연을 들여다보면 그들의 사는 모습이 보이기 때문이란다. 나무를 자라게 하는 과정은 햇볕도 바람도 일조한다. 나무의 보금자리 속에는 개미, 지렁이, 두더지가 살고, 나무껍질 속에는 곤충들이 알을 낳고 번식하지. 나뭇가지에는 벌이나 까치가 둥지를 튼다. 모든 사물이 공유하며 살아가는 모습에서 삶의 지혜를 얻을 때가 종종 있다고 한다.

늦은 햇살에 눈이 부셔 고개를 푹 수그리고 걷는다.

삶이란 다 그런 거지 매일 겪는 일상이잖니? 위로하듯 매미가 노래를 들려준다. 반가워 소리를 따라 올려다보며 목청껏 노래를 실컷 부르고 나면 너는 속이 시원하겠지. 매미도 오늘이 오기까지는 깊은 땅속에서 보낸 긴 세월에 비하면 시간이 너무 짧다.

바람이 다가와 볼과 이마를 스치고 간다. 바람의 접촉이 고마워 벤치로 가 앉아 햇살을 손으로 떠 볼에다 댄다. 어머니의 따뜻한 사랑이 이랬던가 할 정도로 포근한지 눈을 살포시 감는다. 부모 곁을 떠나 자신의 길을 걸으며 넘어야 했던 고갯길이 힘겨울 적마다 잊고 싶어 습관처럼 찾아와 자연과 마주했던 이 자리.

오늘따라 어머니 품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마음을 내려놓는 눈치다. 거칠게 파도치던 마음이 잔잔해진 모습이다. 칠흑 같은 삶일지라도 살아있음이 고맙다는 생각으로 바뀌었나 보다.

벤치에 앉아 정면을 바라보던 눈이 생기가 돈다. 시멘트 블록으로 높게 쌓은 벽에 파란 나뭇잎으로 만든 작품이 하나 걸렸다. 화예(花藝) 강사가 꽂아도 이보다 더 아름답게 못 꽂을 것 같은 작품이다. 다가가 앞에 선다. 주먹 하나 들어갈 만한 물구멍에 뿌리를 박고 자란 물풀이 나무다. 요리조리 젖혀보다 가지를 잡고 당긴다. 어찌나 깊숙이 박혔는지 꼼작도 하지 않는다. 가히 측량 못 할 일이다.

바람이 이 작은 구멍에 씨앗 하나를 업어다 주니 한 줌도 안 되는 흙은 그 씨앗을 품었고 물 한 방울까지 내어주며 이 작품을 만들었다. 여인이 아기씨를 받으면 몸에 품에 생명을 탄생시키는 과정과 같다는 생각이 든단다. 좁은 공간에 뿌리를 박고 사계절의 혹한 연단을 인내하며 가지와 잎을 키우기까지의 수고는 우리네 인생과 별반 다를 바 없음을 깨닫는지 손으로 가슴을 쓸어내린다.

자연이 만들어 놓은 작품을 보며 우리 인간도 너와 똑같은 자연 일부란다. 하여 앞으론 너처럼 처한 환경을 탓하지 않으마. 오늘의 살아있음을 감사하마. 햇볕에 달구어진 시멘트벽 비좁은 공간에서도 힘을 얻어 줄기와 잎을 피울제 앞에 보이는 파란 대지의 동요를 바라보며 얼마나 흠모했겠나. 그러면서도 본연의 할 일을 충실히 수행한 작품을 보면서 자신에게 이렇게 말한다.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질 들풀만도 못한 인생아. 가진 것에 만족할 줄 모르는 욕심이 큰 고통이라고.

자책하며 다짐하기를 비록 늦었지만, 앞으론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고운 마음 한켠에 품어 인간의 걸작품이 되고 싶다고 비장애인은 말한다.



※ 김은혜 수필가=문학미디어 수필 등단. 청솔문학 소설 등단. 저서 수필집`세월을 담은 바구니', `글꽂이', `한길을 걷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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