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는 토끼대로 거북이는 거북이대로
토끼는 토끼대로 거북이는 거북이대로
  • 배경은 단재기념사업회 사무국장
  • 승인 2022.10.30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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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배경은 단재기념사업회 사무국장
배경은 단재기념사업회 사무국장

 

어릴 적부터 병약하고 겁이 많은 나로서는 늘 건강하고 멋진 여성을 선망해왔다. 정의롭고 굳세고 리더십 있는 여성을 동경한다. 그런 여성을 만나면 대책 없이 마음이 쏠린다. 혹은 유약하고 여린 여성이 공동체를 구하거나 모험을 감행하는 캐릭터에 매력을 느낀다.

나탈리 포트만은 내 이상형의 기준에 맞는 캐릭터다. 영화 `레옹'을 보며 나탈리에 대한 사랑을 조금씩 키워왔다. 조숙한 소녀 `마틸다`는 거친 세상에 남겨진 외로운 보석 같았다. 얼마 전엔 영화 '토르: 러브 앤 썬더'를 찍기도 했다.

포트만은 12살 때 환경보호 단체에 가입했고 22살에는 국제공동체 지원재단(FINCA) 대사로 활동하며 지금까지 환경과 동물권, 빈곤퇴치 등 사회적인 문제에 앞장서고 있다. 유명 배우가 갖고 있는 파급력은 상당하다. 그런 그녀가 동화책을 썼다. 이름하여 『나탈리 포트만의 새로 쓴 우화』다.

너무나 유명한 '거북이와 토끼(토끼와 거북이를 바꿔 씀)`다. 패러디 동화를 통해 그녀의 신념과 세계관이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다. 늘 그렇듯이 토끼는 자신의 재능을 뽐내고 싶어 안달이 났고 그때 나타난 거북이 아줌마의 무모한 도전으로 경주는 시작한다.

알다시피 거북이가 이긴다. 그것도 아줌마가! 허약하고 온순하고 답답한 거북이 아줌마가 경주에서 어떻게 이겼을까.

거북이 아줌마는 토끼와의 경주보다 자신과의 직면에 더욱 몰두했다. 그렇기에 장기자랑 거리의 소란함을 마음에서 멀리하고 차분해질 수 있었다. 토끼의 비웃음도 견딜만 했을 것이다. 무엇보다 주위의 분위기를 누리는 대신 자신이 걷는 걸음에서 즐거움을 찾는다.

작가 나탈리는 의도적으로 토끼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려주지 않는다. 그저 '허풍쟁이에게는 인내심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간결한 문장으로 일갈해 버린다.

토끼는 태어나보니 달리기를 잘하는 신체구조를 갖고 있었다. 이것은 우연히 얻게 된 선물 이다. 마이클 샌델의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말한 바와 같이 선물처럼 주어진 것(태어날 때부터 생긴 재능)에 대한 겸손이 필요함을 포트만은 말하고 있다.

현재의 엘리트들이 대우를 받는 것은 그들의 절대적 가치 때문이 아니라 시대가 그의 능력을 높게 평가하기 때문이라고 마이클 샌델은 주장한다. 이처럼 자명한 '우연`이 있을까.

오래전부터 우리는 '유능함`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있다. 공자는 덕이 뛰어나고 유능한 사람이 통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고대 철학자 플라톤은 공공의 정신으로 무장한 계급의 지지를 받는 철인 당이 다스리는 사회를 상상했으며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철인정치엔 반대했지만 능력이 뛰어난 자들이 공공문제에 가장 큰 영향력을 가져야 한다고 보았다.

겸손과 이타심 없는 유능함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자격`을 요구하고 나 같은 사람은 '좌절`의 쓴맛 만 보다 생을 마감할 것만 같다.

보통사람을 위로하고자 그랬을까, 토끼의 오만에 대한 응징이라도 하듯이 '토끼와 거북이` 우화의 패러디 작품은 하나같이 거북이를 두둔한다. 포트만의 작품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정말 지향해야 하는 것은 거북이를 위로하고 토끼를 비난하는 것이 아닌 태생부터 전혀 다른 토끼와 거북이의 공동의 선을 모색하는 것이다. 토끼는 토끼대로 거북이는 거북이대로 각자 쥐고 태어난 환경과 재능으로 자신과 타자를 위한 생이 되도록 살아내는 것이 능력주의로 갈라진 인간성을 모으고 '공정`이라는 말로 경쟁을 부추기는 작금의 이기적 실력주의를 넘어서는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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