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붕이는 내 친구(2)
붕붕이는 내 친구(2)
  • 김영선 한국문화기술연구소 연구원
  • 승인 2022.10.27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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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선 한국문화기술연구소 연구원
김영선 한국문화기술연구소 연구원

붕붕이 사는 마을의 여왕벌은 어린 벌의 날개가 마르면 기숙사에서 살게 했다. 어른 벌이 되기 위해 일벌에게 비행 기술과 꿀 찾는 법을 배웠다. “붕붕은 멍청이!” 구름은 벌집 창에 머리를 기댔다. 평소 마음에 감춰둔 욕을 실컷 쏟아놓을 것처럼 꾸벅꾸벅 졸며 잠꼬대를 했다. 붕붕이의 파란 줄에 무늬가 반짝이다가 사라졌다. 창가에 붙은 별님은 띠 모양으로 생긴 글자가 선명하게 눈에 띄었지만 붕붕은 제 허리 줄이 등처럼 깜빡인 줄도 모르고 잠잤다. “일어나, 구름!” 별님의 호출에 등을 세우고 앉은 구름이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눈을 동그랗게 떴다. “거참 이상하군. 누가 장난치나?” 호기심에 별이 잔뜩 달라붙은 벽에 코를 댔다. 바람이 살랑 부는 느낌이 들었다. 눈동자에 힘을 주다 손가락을 벽에 대려는 순간 찰칵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붕붕의 허리가 파란 건 예삿일이 아니었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숫자, 다섯 개를 찾아오시오'

구름은 붕붕이 숫자 5를 보고 고개를 돌린 일이 떠올랐다. 꿈을 꾸는 것 같았다. “가장 소중한 건 엄만데. 숫자라니?” 벌써 일 년이 지나다니. 구름은 엄마가 보고 싶었다. 머릿속으로 엄마를 생각하자 입가에 웃음이 실렸다. 구름은 붕붕이 생각도, 별님이 붙은 벽도 잊은 채 스르르 다시 잠들었다.

구름이 본 별님은 벽지에 박힌 그림이 아니다. 이미 나흘 전부터 새벽에 형태를 드러냈건만 기숙사에 사는 누구도 그 사실을 몰랐다. 별 대장은 구름을 보며 한숨이 났다. “눈치 없는 벌 같으니.” 대장을 보고 붕붕이 반쯤 실성했으니, 이제 믿을 건 구름뿐이었다. “왕자님은 도대체 어딜 간 거야?” 대장은 길게 한숨을 쉬었다. 별들은 저희끼리 도형 놀이터 놀이를 생각해냈다. 직선 기둥 다섯으로 만든 시소에 올라 힘껏 엉덩이를 굴렀고 철봉에 매달려 원을 그리며 돌았다. 가운데 옆으로 기다랗게 생긴 빵틀 모양의 타원이 되도록 공간을 비워두니 벽은 어느새 멋진 연못으로 변했다. 바닥이 보이지 않는 연못을 보면 대장은 겁이 나서 종종 하품했다. 장난꾸러기 아기별이 다가왔다. “야, 대장! 뛰어내려.” 아기별의 재촉에 대장은 주먹을 꼭 쥐고 발을 앞으로 내밀었다. 대장은 멋지게 보이고 싶었다. `에잇, 무섭긴. 이까짓 것.' 목구멍이 간질거려 침을 꼴깍 삼켰다. 그다지 어려운 것 없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연못 앞에만 서면 까마득히 깊어 보여 눈에 눈물이 고였다. 다리가 부들부들 떨렸다. 대장은 왕복 달리기를 다섯 번 한 사람 마냥 숨차고 가슴이 뛰었다. 주먹을 꼭 쥐었다. `버티자. 곧 날이 밝을 거야!' 대장의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 때문에 인상이 구겨졌다. 웃음거리가 되는 게 싫어서 속으로 다섯을 세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창으로 별의 놀이를 지켜보던 달님이 방긋 웃었다. 달님은 대장을 응원했다. 대장의 신호를 알아챈 달님이 해남을 불러왔다. 창밖은 해의 온기로 붉게 물들었다. 아기별들은 거꾸로 수를 세었다. 다섯, 넷, 셋, 둘, 하나! 깊은 짐에 빠지면서 둥지를 찾는 듯 연못 속으로 몸을 던졌다. “안녕!” 대장이 해님에게 인사했다. 벽은 다시 단단하게 구석을 만들었다.

아침이 되었다. 구름이 눈을 떠보니 붕붕이 바닥 모래판을 엉클며 숫자 5를 빼곡히 적어 내려갔다. 5가 갑자기 모래판을 가득 채운 모래알 수만큼 판자 위로 넘쳐났다. 모래 틀 밖으로 수들이 넘쳐흘렀지만 붕붕은 곁눈질로 슬쩍 쳐다볼 뿐 거의 신경 쓰지 않았다.

“붕붕아, 너 미쳤어? 그만 써.” 구름이 5를 주워들며 목청을 높였으나 붕붕이는 들은 체도 안 했다. 모래판 위에 건물처럼 5가 쌓였다. “징그러워!” 부푼 쓰레기가 떠올라 얼굴을 찡그리던 구름이 방 밖으로 달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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