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일지(6)
전원일지(6)
  • 반영호 시인
  • 승인 2022.10.27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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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반영호 시인
반영호 시인

형님이 부르신 건 올 벌초 건이었다. 날짜를 잡고 형제들에게 전화했다. 작년까지 3년간 코로나로 아무도 오지 않아 형님과 둘이서 벌초를 했었는데 올해는 몇 명이나 참석할지 궁금하다.

형님과 반기문 UN 사무총장 조부의 묘에서 10미터 거리에 있는 부모님 산소를 둘러본다. 벌초 때면 나오는 말이다. 우리 세대가 지나가고 나면 앞으로는 후손들이 벌초를 하지 않고 아예 산소에 와 보지도 않게 되어 나중에는 묘소마다 묵묘가 되고 말 것이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가족 묘지를 만든다거나 납골당을 짓고 흩어져 있는 산소들을 한군데 옮기는 것이 유행처럼 되었다.

우리 가족도 예외는 아니어서 가족 공동묘지를 계획하고 있다. 형제들 가운데도 서둘러 그 일을 추진하는 분이 큰 형님이신데 맏이기 때문에 책임을 더 느끼시겠지만 제일 보수적 경향이 짙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이장해 간 반기문 UN 사무총장 조부묘 자리에 가족묘를 조성하면 어떻겠냐는 말씀을 슬쩍 비치신다.

이에 반해 나는 화장을 하자는 쪽이다. 내 주장에 대하여 하나같이 모두 반대였다. 묘지를 자신이 이 세상에 왔다 갔다는 표식으로 생각하는 모양이다.

변함없이 따사로운 햇볕이 깃들은 양지바른 곳. 그 자릴 탐냈던 큰형님은 “그 양반 산소를 이장해가지만 않았더라면 대통령도 되었을 것이다” 하시며 은근히 목청을 돋우셨다. 형님은 또 “아무튼 이 자리가 명당은 명당이야. 이런 산골에 있는 우리 마을이 세상에 알려지게 됐으니….”

다시 농장으로 돌아오는 길에 고갯마루의 탕건바위에 걸터앉아 음성 시내를 내려다본다. 탕건바위. 탕건(宕巾)은 벼슬아치가 갓 아래 받쳐 쓰던 관(冠)으로 앞쪽은 낮고 뒤쪽은 높게 턱이 지도록 떴다. 집안에서는 그대로 쓰고 외출할 때는 그 위에 갓을 썼다.

탕건바위에는 전설이 있다. 힘센 장수가 음성읍내 뒤 성재산 장수바위에 있는 그와 같이 힘센 장수가 있었는데 그와 종종 힘겨루기처럼 공기놀이로 바위를 던지며 놀았었단다. 쉬는 참에 오줌을 누었는데 그 오줌 누는 장면을 떠오르게 하는 형체가 탕건바위에 고스란히 새겨져 있다. 관의 뒤쪽 높은 곳에 두 팔을 벌리고 탕건바위를 짚었는데 왼손은 손바닥 자국이고 오른손은 다섯 손가락 자국이 선명하며 위쪽으로 침을 뱉었고 오줌발이 어찌나 세었는지 바위가 움푹 파여 있다.

나는 2001 밀레니엄에 이곳 탕건바위에서 능끝들 저쪽 황혼으로 지는 음성의 하늘을 보며 `노을'이란 시를 써 부산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는 영광을 얻었었다.

저/피토하며 꺼져가는/운명을 보라//애절함이 분노처럼 끓어 넘치는/차라리 황홀하고도/아름다운/장엄한 이별/저토록/ 처절한 아픔을 어이하리/저토록/처절한 사랑을 어이하리//해 질 녘/붉은 노을에/꽃 그늘로 지는 바다//

그렇다. 내가 태어나 자란 능모링이는 왕기가 흐르는 곳이다. 주변의 지명이 `왕재고개', `능 끝들', `능모링이'이고 실제로 세계의 대통령인 UN사무총장을 배출한 곳이다.

왕재고개를 넘어 오성산에 오르면 능끝들이 훤히 나려다 보이는데 어디쯤 능이 있기에 그 끝의 들이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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