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집을 떠나가셨어요
엄마가 집을 떠나가셨어요
  • 김용례 수필가
  • 승인 2022.10.27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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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용례 수필가
김용례 수필가

엄마가 집을 떠나가신지 한 달이 되었습니다.

엄마는 아름말을 지나 맹갱이 다리를 건너 철길을 지나 하약고개를 넘어가셨습니다.

홀로 남은 구순의 아버지는 눈물로 시간을 보내십니다.

엄마가 집을 떠나 가시기 전날도 나하고 밤늦게까지 엄마 방에서 몇 시간을 놀았습니다. 집을 떠나가실 거라는 말을 하시지 않았습니다. 얘기하다가 거실에 계신 아버지한테 포도 주스 내린 것 큰애 주라며 아버지를 부르는 소리도 카랑카랑하셨습니다. 말씀하시다가 가끔 입이 마르다고 해서 물을 몇 수저 떠 넣어 드렸습니다.

며칠 전 동네 아줌마들과 모임에서 소고기를 구워먹었는데 엄청 맛있더라고 하셨습니다.

밥을 먹고 목련공원 근처 예쁜 찻집에 갔는데 정원에 꽃이 엄청 많고 예쁘다고 하시며 나보고도 가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추석 전에 친 손녀딸이 다녀갔는데 아무것도 해 먹이지 못하고 용돈만 주었다고 하셨습니다. 보내고 나서 얼마나 속이상한지 한참을 우셨다고 하셨습니다. 그동안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다가 가끔 가슴이 답답하다고만 했습니다. 그런데 아침에 아무 말 없이 거짓말처럼 집을 떠나가셨습니다.

엄마가 집을 떠나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소고기를 구워먹고 찻집에 가셨던 동네 아줌마들이 울면서 오셨습니다.

근례 엄마, 태혁이 엄마, 샤마집(샘 앞에 있는 집) 며느리, 서당 아줌마, 현진이 아줌마, 아양산 아줌마, 함께 밥을 먹고 놀던 분들은 다 오셨는데 용진이 엄마는 집을 떠나가셨습니다.

마당에 잔디는 또다시 황금 물결입니다. 아침저녁으로 감도는 찬 기온에 나무들이 빨갛게 노랗게 물들이고 있습니다. 자연은 떠나는 모습이 이처럼 아름다운데 사람을 떠나보내는 마음은 찢어집니다. 허전하고 안타깝습니다.

아들사랑만 지독한 엄마였습니다. 각별하게 사이좋은 모녀는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엄마가 떠난 친정집은 허전하고 허전합니다. 홀로 남은 구순의 아버지 밥상을 차리는데 눈물이 쏟아집니다. 우리 삼 형제와 엄마, 아버지 이렇게 단출하게 살아본 적이 없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와 삼촌들 고모들과 살다가 삼촌들은 결혼하면서 우리 집 옆으로 이사와 같이 살았습니다. 우리 다섯 식구만 밥을 먹어 본 기억이 없습니다. 늘 분주하고 여럿이 있었습니다. 어려서는 그렇게 사는 것인 줄 알았습니다. 우리 남매들도 다 결혼하고 사촌 동생들도 결혼을 해서도 명절에는 우리 집으로 왔습니다. 그러니 새 사위들 온다고 온갖 음식준비는 엄마 몫이었습니다. 나와 여동생은 투덜거렸습니다.

사람 집에는 사람이 꼬여야 하는 거라며 우리를 나무라셨습니다.

나는 요즈음 맥 놓고 앉아 있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죽음이라는 것이 찾아옵니다. 젊은 사람들은 87살에 떠나가시면 어떤 이유가 됐든 이상 할 것이 없다고 합니다. 커다란 플라타너스 나무가 가을에 단풍들어 입 하나가 툭 떨어뜨리는 일처럼 가볍게 여깁니다. 사람과의 이별은 그렇게 가볍지가 않습니다. 약속할 수 없는 시간인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맥없이 떠나실 줄 몰랐습니다. 나뭇잎은 떨어지고 찬바람은 옷 속을 파고들고 엄마는 떠나고 구순의 아버지를 앞에 두고 밥상을 차리는 일, 집을 떠나가신 엄마보다 집을 지키고 계신 아버지가 더 가엾습니다. 몇십 년을 함께 살고도 떠난다는 말 한마디 없이 가는 것이 이생과 작별하는 인사 인가 봅니다. 이 딸은 엄마가 계신 그곳에서 평안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아름말, 맹갱이다리, 철길, 하약고개는 예전에 살던 집에서 읍내로 나가는 길에 있는 명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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