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 물들기
가을에 물들기
  • 노동영 변호사
  • 승인 2022.10.26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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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노동영 변호사
노동영 변호사

요즘 지인들끼리 “가을 가을 하세요”라는 구어 표현을 종종 씁니다. 이 멋진 계절을 즐기라는 인사 표현인데 어법에는 맞지 않습니다. 그런데 농작물 등을 거두어들인다는 뜻의 `가을하다'라는 단어가 있으니 아주 틀렸다고는 할 수 없겠네요. 필자가 더 젊은 시절에는 어느 계절이 제일 좋은지 생각할 때, 생일이 있는 겨울인 것 같다가도, 또 혹한을 이겨내 만물이 싹을 틔우고 흙냄새 가득한 봄인 것 같다가도, 한편으로는 만물이 푸르고 가득찬 여름인 것 같았습니다. 이제는 가을이 제일 좋다는 확신이 듭니다. 정겹고 설레는 추억이 가득한 장면들이 가을에 있고, 이 계절을 체감할 때 그 추억들을 떠올려 함께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8월 26일자 타임즈포럼 `낮은 마음으로 임하기' 처럼 낮은 마음으로 가을에 스며드는 두 가지의 노력을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밀려드는 일에 집중하다가 쉼이 필요할 때 소극적 방식으로 바람 쐬며 멍 때리는 것 말고 적극적 방식의 쉼으로 시도하는 것들입니다. 하나는 새롭게 만든 봉사대를 통해 뜨거운 가슴으로 땀 흘리는 것, 또 하나는 국문학과 진학을 생각할 정도로 문학청년 시절에 부단히 습작했던 시의 세계에 다시 빠져 시를 써보고 시를 낭송하는 것입니다.

첫 번째 이야기. 지난 7월부터 봉사대를 새롭게 만들 생각으로 먼저 장애인가정에 김치를 만들어 직접 배달까지 한 첫 봉사활동이 있었습니다. 이미 주위에는 읍·면·동별 지역에 가까운 이웃끼리의 봉사대나 뜻이 맞는 사람들의 모임에서 실시하는 봉사활동이 굉장히 많습니다 .`봉사'는 그 어떤 방식으로든 아름다운 일이고 기존 봉사단체에 들어가서 활동하는 것도 방법이겠지만, 그래도 봉사활동을 하지 않던 다양한 영역의 사람들을 끌어내어 많은 봉사단체의 활동과 다른 모습을 보이는 봉사대를 만들겠다는 생각이 컸습니다. 회원들이회비를 낸 비용으로 김치 재료를 직접 사서 마침 회원이 마련해준 장소에서 웃음과 땀으로 함께 다양한 종류의 김치를 매달 만들어 제안받은 청주 및 인근 군지역(보은·진천· 증평·괴산 등)의 장애인가정에 손수 배달하는 봉사가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 열정과 시간에 비례해서 응원이 많이 늘어나고 있어 아주 뿌듯합니다.

두 번째 이야기. 충북변호사회보를 전국에서 모범적으로 발간하고 있고, 여기에 충북의 아름다운 풍경을 담은 사진과 향토시인의 시를 발굴하여 인문학과 휴머니즘을 입히고 있습니다. 고교 졸업 후 20여년이 흘러 시인이자 고교 은사님의 도움을 받은 덕분인데, 자연스레 은사님의 소개로 시창작과 시낭송의 세계에 빠져들고 있습니다. 평소 시조와 동시를 배워 써보고 싶은 생각은 있었는데, 자작시가 아니더라도 유명시에 감성을 담아 읊조리는 시낭송의 매력을 알아가고 있습니다. 시는 진즉 자주 써보았던 터인데, 시를 낭송하는 것은 직접 접하기 전에는 오글거리는 느낌이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시창작 강좌 수강, 시낭송콘서트 준비, 은사님의 시집 발간 기념 북콘서트 참여 등 시를 통해 이 가을에 흠뻑 젖는 것은 특기나 취미의 의미가 아니라 그 자체로 휴식입니다. 법조를 업으로 삼는 필자인데, 25년을 학문과 실무를 위해 달려왔으니 이제는 법으로부터 무관하거나 떨어진 세계를 접할 때 온전한 쉼을 느낍니다.

근로자라면 가슴 속에 늘 사직서를 준비만 하고 있다고 이야기 합니다. 열심히 일하고 달려왔다면 분명 파업(罷業)이나 태업(怠業)을 하고 싶은 순간이 있을 겁니다. 이 멋진 가을에 좋아하면서 쉼을 할 수 있는 것 하나로 물들 수 있다면 힘든 순간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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