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이후와 이전의 세계 - 청주시 청사의 운명에 부쳐
도시, 이후와 이전의 세계 - 청주시 청사의 운명에 부쳐
  •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 승인 2022.10.18 17:5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수요단상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끝내 사라질 것인가. 어쩌면 기사회생으로 남아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청주시청 본관 건물이 존재와 부재, 위태로운 `경계'의 모서리에 있다. 이러한 논란도 고스란히 `역사'가 될 것인데, 우리는 지금 정·반·합의 변증법이 실종된 도시에 살고 있다.

청주시청 청사는 `새로 지음'이 돌이킬 수 없는 사실이다. 그 건설의 과정에 기존의 청주시청 본관이 `남아 있음'의 가능성은 대체로 옅어지고 있음이 체제의 현실이다.

청주시청의 본관 건물이 새로 지어진 1965년의 도시는 나름 청운의 꿈이 가득한 시기였다. 한국전쟁의 상흔은 빠르게 회복되고 있었고, 사람들의 `자유'를 가로막았던 야간 통행금지가 사라진 충청북도의 자랑은 그 해 3월 1일부터 시작되었다. 혁명과 쿠데타로 점철된 혼돈의 시기를 뚫고, 어쨌든 번영을 위한 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차질없이 진행되던 시대였다. 해방과 전쟁의 위태로운 질곡을 뚫고, 지방행정조직도 비로소 일제강점기의 관성과 잔재를 끊어내는 체계를 갖추던 시대였고, 청주시청 청사의 건축은 그 상징으로 삼기에 조금도 손색없다.

천년의 숨결이 살아있는 역사 도시 청주를 실감할 수 있음은 시민이든 방문객이든 마땅치 않다. 면면히 이어지는 시민의 역사의식이거나 고도(古都)시민의 정서 따위는 눈에 띄지 않으므로 변별로 표시될 수 없다. 게다가 서원소경이거나 마한의 옛 땅, 현존하는 인류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본 `직지'에 이르도록 형체는 희미하거나 지금/여기에 없다. 심지어 찾으려 안간힘을 써왔으나 청주읍성 또한 완전하게 사라지고 말아 당당한 실체는 역사로 실감할 수 없다.

천년의 역사 도시 청주의 읍성은 1592년, 지금으로부터 430년 전 임진왜란 당시 육상전투의 첫 승전보를 올린 곳이며, 왜군에게 패배를 거듭하던 조국에 처음으로 성을 탈환한 역사를 새긴 곳이다.

일제는 강점 이후 치수를 명목으로 청주읍성을 형체도 찾을 수 없게 허무는 보복으로 지금껏 청주의 `보이지 않는' 역사를 만들었다. 천년고도를 실감할 수 없는 `현재'를 만든 것은 제국주의의 침략이었고, 우리는 다만 실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의병과 승병으로 구성된 백성의 빛나는 응전과 광복, 지켜내려는 거룩한 희생을 도시의 핵심 가치로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

일본의 도발을 물리친 430년 전의 투혼과 일제강점기의 관행을 뿌리친 1960년대 청주시청 청사의 건축은 천년 도시 청주의 역사적 흐름을 도도하게 이어가는 줄기와 같다. 그러므로 그 상징성은 도시의 장소적 견고함과 더불어 시민의 긍지와 자부심, 즉 청주 정체성 확립의 핵심 가치로 설정할 인문학적 연구가 중요하다. 한마디로 `직지'에 국한하지 않는 포괄적 역사적 전통과 정통성을 충분한 자랑거리로 삼을 수 있는 스토리텔링이 건축물을 부수거나 새로 짓는 일보다 먼저여야 한다.

청주시청 본관 건물은 철근콘크리트 구조로 지어졌다. 나무로 세우거나(목조) 벽돌과 쌓아 올린(조적) 그때까지의 근대 상황에서 진보한 현대건축의 초기 특성에 대한 건축사적 가치도 깊이 있게 연구할 필요가 있다.

1960년대는 세계사적으로도 거칠고 격렬한 도전의 시대였다. 제국주의는 해체되어 지구상에 식민지는 대부분 사라졌고, 성장과 발전은 나라마다 치열해졌으며 계급과 인종 등 사람 사는 세상의 온갖 모순에 대한 해방의 기운 또한 가열되었던 시대정신을 품고 있다.

지금의 BTS는 60년대 비틀즈가 대중문화를 통해 지구촌 청년들을 흔들었던 과감한 도전의 역사에서 비롯되었고, 프랑스 68혁명 등에서 제기되었던 저항의 함성은 21세기인 `지금/여기'에서 구가되는 모든 `자유'의 기준점이 되고 있다. 그러므로 청주시청 본관은 세기적 전환의 60년대 힘의 상징으로 남아야 한다.

역사는 언제나 그렇듯 결코 지나간 이전(past)에 맴돌지 않는다. 그렇게 가두어 놓을 일도 절대 아니다. 그러므로 체제가 바뀌었거나, 나만이 추구하는 잣대를 통해 옳고 그름을 가를 수 있다는 잣대로는 누구든 도시의 이후(post)를 장담할 수 없다.

새로 시작하는 모든 미래는 제대로 아는 역사와 과거(past) 의 힘에서 나온다. 부서지는 것, 사라지는 것들은 대체로 재미없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