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을 걸어 놓으며
가을을 걸어 놓으며
  • 신미선 수필가
  • 승인 2022.10.13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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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신미선 수필가
신미선 수필가

 

저 멀리 남녘 아랫마을에 사는 지인이 단감 한 상자를 보내왔다. 받은 날로부터 열흘 정도 선선한 곳에 놓아두면 말랑말랑한 홍시가 된다는 문자도 함께 덧붙였다.

햇빛이 들어와 가장 오래 머무는 앞 베란다에 단감 상자를 놓아두고 나니 왠지 가을이 내 집 안까지 성큼 다가온 것 같다. 바야흐로 달콤한 감 맛만큼 사랑스러운 계절 가을이다.

가난한 딸네 집 가는 것보다 가을 들녘이 낫다고 창밖 너머 들녘엔 온통 황금빛이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오래된 어느 집 마당에도 나무마다 주홍빛 감이 주렁주렁 내 걸렸다. 꽃이 피고 여름을 견뎌내 만든 더없이 고운 빛깔이다. 뭐니뭐니해도 가을을 느끼기에 가장 알맞은 풍경은 역시 감나무를 빼놓을 수 없다.

어렸을 적 할머니는 감을 무척 좋아하셨다. 단감은 단감대로, 홍시는 홍시대로 모든 감을 다 좋아하셨다. 늦가을이면 곶감을 만들기 위해 툇마루에 앉아 온종일 감을 깎아 처마 끝에 매달아 놓기도 하셨다.

감이 시장에 나오기 시작하는 늦가을부터 겨울까지 아버지는 바깥 볼일을 보러 나가면 항상 감을 사 들고 들어오셨다. 엄마도 장날이면 가장 먼저 감을 사 들고 오셨다. 멀리 서울로 출가를 하신 고모님도 시간이 날 때마다 감 한 상자를 사서 머리에 이고는 친정 나들이를 하셨다. 그러면 할머니는 문갑장 위에 지난달 달력을 뜯어 그 위에 단감을 나란히 줄 세워 놓으시곤 손가락을 펼쳐 들고 수를 세곤 하셨다.

멀리 전라도로 시집을 간 아버지의 누이이자 나의 고모님은 오른쪽 다리가 불편하셨다. 한쪽 다리는 정상이고 다른 한쪽 다리가 발목만큼 짧아 늘 절뚝절뚝 걸으셨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이지만 어린 시절 감나무에 올라갔다가 떨어져 다친 사고로 영구 장애가 되었다고 한다. 그때 얼른 병원으로 데려가 처치를 제때 했더라면 평생 장애를 달고 살진 않으셨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할머니는 술만 드시면 혼잣말을 되뇌셨다. 이후로 고모가 성년이 되고 결혼을 시킬 때 혼처 자리를 찾느라 애를 먹었다는 할머니는 한때 감을 입에 대지도 않으셨다.

그 일이 있고 난 후 할아버지 역시 마당의 감나무를 베어 버렸단다. 올망졸망 자식들에게 겨울철 간식으로 내어줄 요량으로 심어놓은 감나무였건만 그날 이후 애물단지가 되어버린 것이다.

겨울이 시작되면 마당 한 곁 김장독 옆으로 빈 독을 하나 더 놓고 다람쥐 알밤 모으듯 감을 따 저장해 놓던 시간은 그 후 할머니가 치매에 걸리고 많은 기억을 잃은 후에야 다시 시작되었다. 할머니가 다시 감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고모님도 과거는 모두 잊은 듯 할머니만 좋다면 뭔들 못하겠냐라며 해마다 감을 사 보내주셨다. 고모님이 감나무에 대한 아픈 기억보다는 치매를 앓고 있는 할머니의 잃어버린 시간을 더 애달파했기 때문이리라.

이후로 자식들은 예전처럼 할머니에게 감을 사 드렸다. 노환으로 이가 거의 없으신 탓에 홍시처럼 말랑말랑한 감은 긴 겨울 할머니의 훌륭한 간식거리가 되었다.

홍시 하나에 행복해하는 할머니의 주름진 얼굴, 그 모습이 보기 좋다며 수시로 택배를 보내오던 고모님의 깊은 마음은 두고두고 내게도 배움이 되었다.

올해도 나는 단감으로 홍시를 만들고 몇 줄은 곱게 깎아 걸어놓고 이 가을을 맞이할 참이다. 그리고 고향 부모님께 택배를 보낼 것이다. 익을 만큼 익어야 떫은맛이 가시고 달콤한 홍시로 익듯 시간이 흘러야 이해되는 것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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