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에 웃고 우는 인생사
말에 웃고 우는 인생사
  •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 승인 2022.10.12 15: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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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원의 목요편지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말에 웃고 말에 우는 인생사입니다. 칭찬과 사랑이 담긴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고 온유해지지만 비난과 무시가 담긴 말을 들으면 기분이 언짢고 공격적이 됩니다.

이렇듯 사람의 심사를 쥐락펴락하는 게 바로 말이고 언사입니다. `말 한마디에 천금이 오르내린다'라는 속담과 `말 한마디에 천 냥 빚도 갚는다'는 속담이 이를 웅변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아이나 어른이나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습니다. 고운 말은 메아리가 되어 주위를 훈훈하게 하고 몹쓸 말은 부메랑이 되어 자신을 옥죄는 멍에가 됩니다. 어떤 이는 말 잘해서 영웅 대접받고, 어떤 이는 말 잘못해서 천하에 몹쓸 놈 취급받습니다. 그게 세상사입니다. 모든 인간은 조물주로부터 말 할 자유를 부여받았고, 자유민주국가 역시 말할 자유를 법률로 보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말이 많다보면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될 말이 뒤범벅이 되어 본의 아니게 실수를 하게 되고, 심지어는 목숨을 잃는 설화를 입기도 합니다. 수해복구현장에 봉사하러 갔던 여당 국회의원이 `사진 잘 나오게 비 좀 왔으면 좋겠다'고 말해 국민의 공분을 샀습니다. 좋은 일 하러 갔다가 세치 혀를 잘 못 놀려 자신과 조직에 큰 상흔을 남겼습니다.

그렇듯 한번 내뱉은 말은 쏟아진 물과 같아 다시 주워 담을 수 없음이니 삼가도 또 삼가야 합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진솔하게 하데 설사 웃자고 한 농담이고 유머라 할지라도 불쾌히 여기는 이가 있으면 즉시 중단하고 이해를 구해야 합니다. `침묵이 금'이란 격언에 동의할 수밖에 없는 서글픈 간극이 존재하는 까닭입니다.

주지하다시피 말이 글이 되고 노래가 되고 춤이 되고 연극이 되고 과학이 됩니다. 하지만 말이라고 다 말이 아닙니다. 내면을 살찌우는 금과옥조 같은 말이 있고 귀를 더럽히는 쓰레기 같은 말이 있습니다. 잘하면 말씀이 되고 소통이 되지만 잘못하면 개소리가 되고 원수가 되기도 합니다.

같은 말이라도 하는 이의 연륜과 인격과 지위에 따라 무게감이 달라지고 말투나 표정에 따라 느낌이 달라지니 쉽고도 어려운 게 말입니다. 사람들은 겸손과 친절과 배려가 녹아 있는 말에 공감하고 감동하며, 거만과 퉁명과 이기가 배어있는 말에 거부감을 느끼고 배척합니다.

요즘 우리사회가 유튜버들의 허위과장 뉴스와 선전선동으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발 없는 헛된 말이 인터넷이라는 준마를 타고 지구촌 방방곡곡을 헤집고 다니니 정말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요지경 세상입니다. 그야말로 `말로써 말 많으니 말 많을까 하노라'라 입니다.

말 사용료가 있어 말할 때마다 청구서가 날라 오면 사람들이 필요한 말만 할 터인데 하는 어줍은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정치인은 현란한 말로 유권자의 마음을 훔치고, 사기꾼은 그럴듯한 요설로 상대를 등칩니다.

그러므로 온갖 매체로부터 쏟아져 나오는 말들을 걸러듣는 내공을 길러야 합니다. 말은 곧 화자의 인품이고 얼굴입니다.

이런 글을 쓰는 필자도 이따금씩 말실수로 가슴앓이를 하고, 무시 하는듯한 말에 발끈하고 분노하기도 합니다. 고희에 이르렀는데도 아직도 그 모양이니 부끄럽고 면목이 없습니다. 경박하고 도량이 좁아 생기는 불상사니 헛된 욕심을 비우고 알량한 존심을 내려놓고 사는 길 외에 달리 방도가 없겠지요.

가급적 듣는 귀는 크게 열고 말하는 입은 적게 열고 살리라 다짐해봅니다. 입을 열 땐 `덕감사'(덕분입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로 시작하고 덕감사로 맺으려 합니다. 그리 살았고 앞으로도 그리 살아야겠기에.

말에 울지 않고 말에 웃는 그대이기를.



/시인·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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