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오늘에야 50이 된 건 아니다. 해가 바뀌면 나이를 먹게 되는 당연한 이치대로 50은 자연스럽게 내 나이가 되었다. 50을 받아들여야지 했는데 만 나이를 사용한다는 것 아닌가? 기다렸다. 만으로도 50이 되는 때를. 그런데 생각해보니 이제 곧 2022년이 저물고 새해가 오면 만 나이든 우리 나이든 50이 마땅한 때가 온다. 지금 받아들이는 것이 딱 좋다.
호스피탈리티연구소의 다카노 오보루는 사람의 목숨이 밟게 되는 다섯 단계를 구분하여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목숨은 `숙명, 운명, 사명, 천명, 수명'의 단계를 따라 성장하고 소멸해 간다고 한다.
숙명(宿命)은 한자 그대로 깃드는 명(命)이다. 태어난 시대, 태어난 나라, 태어나게 해주신 부모, 남자로 또는 여자로 태어나게 된 것, 가지고 태어난 몸 등 스스로 결정할 수 없는 모든 것은 숙명에 해당한다. 목숨은 타고난 숙명을 받아들이면서 생명을 시작한다.
하지만 운명은 조금 다르다. 사람의 운명(運命)은 망망대해에 떠있는 나뭇잎처럼 거대한 흐름을 타고 흘러가지만 숙명처럼 흐르는 대로 내 몸을 맡기는 것이 아니다.
노력이 발휘되면 자신의 힘으로 충분히 방향을 바꾸고 속도를 바꿀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운명은 앞에서 날아오는 화살이요, 숙명은 뒤에서 날아오는 화살이라고 평했다. 앞에서 날아오는 화살을 피하듯 자신의 힘으로 노를 저어 가며 망망대해를 운행하는 것, 흐르는 명(命) 운명이다.
사명(使命)은 사용하는 명(命)을 일컫는다. 이 단계에서는 무엇을 위해 목숨을 사용할 것인가, 사는 동안 노력을 기울여야 할 사명은 무엇인가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
`성공하는 사람들의 일곱가지 습관'의 저자인 스티븐 코비도 두 번째 습관으로 `끝을 생각하며 시작하라'를 들었다.
여기서 `끝'이 바로 자신의 사명. 미션(mission)이다. 사명의 단계에 이른 사람은 자신의 목숨을 걸고 해야 할 일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하고 그것이야말로 내가 이 땅에 부름 받게 된 소명, 사명이다.
천명(天命)은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명(命)이다.
오보루는 매일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다 문득 하늘을 바라보며 자신의 그 삶이야말로 천명이었음을 깨닫게 되는 순간을 맞닥뜨린다고 하였다. 자신이 해온 일이 무의미하거나 가치 없는 것이 아니라 필연적인 것이었음을 깨닫고 이해하는 것이 바로 천명이다. 목숨의 마지막 단계는 수명(壽命) 즉 하늘이 정한 삶의 시간이다. 숙명, 운명, 사명, 천명의 계단을 충실히 밟아온 사람은 하늘이 정한 삶의 시간을 마치고 새로운 여행을 떠나게 된다.
숙명, 운명, 사명, 천명, 수명'의 다섯 단계는 나이에 따라 구분 지어지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공자님도 50 즈음에 하늘의 명을 깨달았다니 숙명, 운명, 사명의 삶을 잘 살아온 사람은 50 무렵 그야말로 `지천명(知天命)'을 누리게 된다.
이제 나도 50이 되었고 목숨의 단계에서 4/5쯤 와 있으니 지금까지의 삶이 의미 있었고 가치 있으며 하늘이 부여한 필연의 삶이었다고 고백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나이는 50이되, 나는 아직 저 아래 어느 단계쯤에 있는 모양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제 조금씩 깨닫고 있다는 것. 하고 싶은 일만 하게 될 때 받게 되는 불이익과 적어진 수입에도 만족할 수 있는 용기를 갖게 된 것 역시 이 나이가 주는 선물 중 하나다.
다카노 오보루 씨의 목숨 이론이 소개된 책 제목이 뭐라더라? 50부터 뻗어가는 사람, 시들어가는 사람? 그게 어디 나이 50뿐이랴? 스물다섯 때에도, 서른여덟 때에도 자신의 선택과 노력에 따라 뻗어가기도 시들어가기도 하는 것 아닌가? 목숨의 다섯 단계를 충실히 밟으며 하루하루 내 목소리를 잘 듣고 살아가는 것, 그것이 진짜 행복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