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 원룸
고독한 원룸
  • 김경수 시조시인
  • 승인 2022.10.11 17:3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生의 한가운데
김경수 시조시인
김경수 시조시인

 

누군가에게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가 새벽 단잠을 치고 달려갔다. 얼마 후 전화벨이 울렸다. 홀로 사는 작은 원룸 안이 시끄러웠다. 모르는 번호였다. 전화를 안 받으려니 켕기었다. 병천은 하도 수상쩍은 세상이라 받지 않으려고 하였다. 그런데 전화를 받아보니 부동산 사무실이었다. 어찌된 영문인지 일단 알아보기로 하였다. 그리고 그날 저녁 술 한 잔을 걸친 병천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한동네에 가까이 사는 사촌형 식당에 들러 형수에게 한우 한 덩이를 불쑥 내밀었다. 병천의 갑작스런 행동에 사촌형 부부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평소 같으면 구석 한켠에 우두커니 쭈그리고 앉아 있다가 사촌형이 권하는 술 몇 잔을 얻어먹고 얼근하게 취할 때가 되면 큰 소리로 불만을 쏟아놓던 병천 이었다. 그런 그가 한우라니 다른 사람은 몰라도 돈 한 푼 없어 쩔쩔매던 그였기에 깜짝 놀랄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더구나 사촌형에게 크게 한 턱 내겠다며 사람들을 불러 잔치라도 벌일 기세였다. 게다가 얼마 전 까지만 해도 밀린 월세를 내지 못해 안절부절하던 병천에게 삼십만원을 빌려준 그였기 때문에 의문은 더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들 사이로 술잔이 몇 번을 돌아가고 난 뒤 사촌형은 참고 있던 궁금증을 던졌다. 병천은 그 말에 웃으며 대답했다. 산골 깊숙이 박혀있던 짜투리 땅을 누군가 후한 값으로 사겠다는 것이었다. 그 동안 쓸모없는 땅이라고 내박쳐 두고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던 땅이었다. 어쨌든 값을 떠나 그로 인해 병천은 그의 숨통을 조이던 빈곤을 털고 싶었던 것이었다. 아닌게 아니라 그는 늘 빈곤에 투덜거렸다. 그런 연유로 한 여름 땡볕에서 회갑이 지난 나이로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해야만 했다.

빈곤은 그만큼 그에게 혹독했다. 어느덧 술잔이 거듭될수록 시간도 거듭 흘러갔다. 병천은 비록 술이 취했지만 이런 기회에 사람들에게 인심을 쓰며 다소나마 그의 초라했던 모습을 벗기고 싶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런 그의 기분을 알 까닭이 없는듯 했다. 결국 사람들은 돌아가고 그 또한 돌아가야 했다. 사촌형은 술 취한 그를 보내 놓고 나서 그의 안부가 궁금했다. 그런데 하루가 지나고 사흘이 지나도 그에게서 소식이 없었다. 미심쩍은 생각이 든 사촌형은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의심이 염려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사촌형은 병천이가 사는 원룸으로 달려갔다. 문을 열자 그가 쓰러져 신음하고 있었다. 그가 홀로 고통을 받고 있어도 아무도 그런 곤궁에 처해 있다는 것을 가까이 있는 사람이라 해도 알 수가 없었다. 사촌형은 그에게 빈곤이 지나가면 모든게 해결될 줄 알았는데 해결되지 않는 것이 남아있었다. 그것은 홀로라는 고독이었다. 구급차의 싸이렌 소리가 바람을 치고 달려갔다.

노인에게 빈곤 문제는 심각하다. 하지만 때론 빈곤보다 더욱 심각성을 보여주는 것이 있다. 그것은 고독이다.

어찌보면 빈곤과 고독은 닮은 점을 텅 빈 곳에서 느낄 수 있다. 빈곤은 물질이나 경제로부터 텅 빈 곳으로 찾아오는 어려움이라면 고독은 텅 빈 공간으로부터 고독의 이유를 묻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빈곤이 겉으로 드러난 듯 한 일이라면 고독은 가리워진 듯 모르다가 은연중에 그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이 심각하다고 말하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