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는 해
뜨는 해
  • 반지아 괴산 청안초 행정실장
  • 승인 2022.10.06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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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반지아 괴산 청안초 행정실장
반지아 괴산 청안초 행정실장

 

우연히 텔레비전을 켰다가 진귀한 장면을 마주했다. 세계적인 부호 빌 게이츠와 워런 버핏이 한 패스트푸드점에서 아르바이트하는 모습이었다.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어 계속 보고 있자니 유튜브 채널을 운영 중인 빌 게이츠가 무려 워런 버핏을 게스트로 초대해 촬영하고 방영한 영상이었다. 사실 이름만 숱하게 들어봤지, 얼굴을 잘 모르기에 거리에서 지나쳤다면 흔한 미국 할아버지처럼 보였을 두 명이 세계 경제의 중심이라는 사실만으로도 평소 텔레비전을 좋아하지 않는 나를 소파에 붙잡아 두기에 충분했지만 이어지는 진행자의 멘트는 가히 더 놀라웠다.

“역시 세계적인 부자는 달라도 달라요. 유튜브 수익 창출? 그런 거 안 합니다.”

본래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고 있는 사람이 더 하다는 말이 진리가 아니었던가. 저들은 도대체 재산을 얼마나 가지고 있기에 애초부터 유튜브 수익 창출을 생각하지 않았던가, 하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기 시작하자 그 방향키가 이번에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나를 향했다. 나는 저들의 나이에 다다라도 저들 재산의 1%도 가지지 못하겠지, 아마 다시 태어나도 마찬가지일 거야. 내가 내뱉은 깊은 한숨에 스스로가 내려앉을 것만 같았다.

우리의 인생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의 순위를 매기자면 단연 1위는 `돈'일 것이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 당연히 어느 정도는 소유하고 있어야 하는 것이 돈이라지만 어느 순간 그 영향력이 굳이 돈이라는 결과물을 창출하지 않아도 존재 자체만으로도 빛이 나는 것들의 가치를 무색하게 하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본다.

그래서인지 언제부터인가 재태크책이 아닌 소설이나 에세이 책을 읽는 나에게 그런 책이 무슨 도움이 되냐고 던지는 핀잔과, 주식이나 코인에 투자하지 않고 무언가를 기록하는 데 노력과 시간을 들이는 나에게 그러다 나중에 후회한다고 지금이라도 정신 차리라고 던지는 질책 비슷한 조언들이 너무도 당연시하게 여겨지는 분위기가 이제는 불쾌함을 넘어선 씁쓸함을 남기고 있다. 그리고 더욱 절망스러운 건 그 속에서 청년들이 시들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돈으로 모든 것을 정의할 때 청춘이기에 할 수 있는 도전과 상상 그리고 어떤 엉뚱함과 기발함은 서서히 고유의 원색을 잃고 무채색이 되어간다. 불특정 다수에게 의미를 잃은 그 모든 것들을 꺼내놓는 순간 나 자신이 멍청이라는 것을 증명할 뿐이다. 나 역시 이런 분위기에 휩쓸려 삶의 황혼기를 지나고 있는 두 부호를 보며 내 처지를 비관했다.

수험생 시절 존경하던 강사님이 하신 말씀이 떠오른다. “나는 남부럽지 않게 돈도 벌었고 내 분야에서만큼은 그 누구에게도 뒤처지지 않지만, 항상 여러분 앞에 설 때면 부러움을 감출 수가 없다. 내 가진 돈을 다 주고서라도 당신들이 가진 청춘, 그 젊음을 사고 싶다.”

시험에 붙을 수만 있다면 진짜 뭐라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절박했던 시절이었기에 삐딱하게 들었던 그날들이 부끄럽게 나는 인제 와서야 그 강사님의 말씀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 그는 지는 해는 뜨는 해의 아름다움을 결코 다시 가질 수 없음을, 그 아름다움을 이 잠깐의 시기에 영영 잃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전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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