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장(罷場)
파장(罷場)
  • 김기자 수필가
  • 승인 2022.10.04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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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기자 수필가
김기자 수필가

 

오일장의 저녁풍경이 의외로 분주했다. 아직 남아있는 사람들의 호흡이 파장이라 여기지 않을 만큼 활기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서로가 조급해 보이지도 않았다. 여기저기 좌판을 정리하는 모습에서 부터 트럭에 가득 옮겨놓은 짐들의 부피마저 고단한 무게가 아니었다.

내일을 준비하는 의지의 무게로 보일 뿐이었다.

사람들은 모두 썰물처럼 사라져 갔다. 그러나 아직도 그곳에는 한낮의 왁자한 온기만큼이나 많은 그림자들이 여울져 있는 듯 했다. 시장의 풍경이 그러하듯 목청을 높이며 사람을 부르는 소리, 가지런히 정돈된 좌판을 지키던 얌전한 상인의 눈빛이 아직도 내 마음에 닿아 있었다. 신기했다. 느린 걸음을 하며 파장의 여운을 한껏 즐기기로 했다. 왜 이토록 그곳이 낯설지 않은 걸까. 무엇 때문에 나는 그곳에서 해매이고 있는 걸까.

내가 살아가는 행로도 하루의 시장풍경 같은 생각이 든다. 돌아보니 풋풋한 시절, 그 때는 고생도 약으로 여기며 지내왔다. 고단한 육신을 이끌면서도 마음은 늘 가볍기만 했다. 이 얼마나 한낮의 시장풍경과도 같았을까 하며 지금과 비교해 본다. 참 바쁘게 달려온 세월인 것 같다. 이제는 인생길의 시계가 가을이 절정에 이르러 있을 만큼 마음도 넉넉하다.

생을 위한 몸부림은 숭고하다. 그에 반해 자신을 갈무리하는 오후의 시간도 중요한 부분이지 않던가. 그동안 사사로운 감정이나 이해관계에 부딪힐 때의 고뇌를 돌아보면 남은 시간이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 어느 때 마지막에 이른다 해도 가벼운 마음으로 떠난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어서다.

파장의 상인들에게서 어떤 의미를 발견했다. 그리고 삶의 혼신을 보았다. 그 안에 스며있는 모든 것들은 삶의 원동력이 되기에 충분했다. 그런 이유로 파장의 기운은 쓸쓸하지 않았다. 진한 향기로 다가왔다.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들로부터 듣는 이야기가 있다. 그리 곱더니 많이 늙었다고 한다. 당연한 이치이다. 세월의 순서에 따라 주름지고 식솔이 늘어나며 병약해져간다는 사실을 어찌 모른다 하겠는가. 이런 상황 속에서 과연 내게 남은 시간을 어떻게 사용해야만 할까 생각해 볼 일이다. 후회 없이 미련 없이 꾸려보고 싶어졌다.

내 인생도 파장의 마당으로 가고 있는 시간이다. 내일 또 다른 곳에서 시장을 펼칠 준비를 위해 애쓰는 저 사람들처럼 생각해 보면 하나도 다를 바 없는 것 같다. 삶의 시계는 지금 가을 한 낮이다. 슬그머니 오후의 햇살에 마음을 기대어 본다. 아침저녁 서늘한 바람에 단풍이 고운 물결을 더해가고 있다. 같이 물들어 간다. 온 세상 사람들이 저리 한 마음으로 아름다워졌으면 좋겠다. 파장 한 쪽에서 방금 떠나는 생선트럭의 비릿한 냄새가 전혀 거북스럽지 않은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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