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는 아프다
평화는 아프다
  • 전영순 문학평론가
  • 승인 2022.10.04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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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전영순 문학평론가
전영순 문학평론가

 

평화의 상징 비둘기, 그는 왜 앓는 소리를 할까?

종교와 전쟁에서 평화의 상징으로 일컬었던 비둘기, 나는 “평화”라는 기의 대상과 투쟁 중이다. 오늘만 해도 꾸룩꾸룩 거리는 비둘기와 몇 차례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 잠시라도 눈을 떼면 어느새 다른 동료를 데리고 와 떡하니 자리를 잡고 제집 행세를 한다. 나도 그에 질세라 오늘부터 우리 집에 발도 못 붙이게 할 작정이다.

모처럼 낮에 집에 있는데 이 정도로 드나든다면 내가 없을 때는 얼마나 자주 드나들었을지 지레짐작이 간다. 밖을 내려다보니 실내기 위와 받침대 아래에 배설물이 난리도 아니다. 잘 놀다가 갔으면 깨끗이 치우고 갈 일이지 뒷일은 나 몰라라 하니 누가 그를 반기겠는가. 그것도 모자라 내가 아주 듣기 싫어하는 소리를 하고 있으니 참으로 기가 찰 노릇이다.

도대체 얼마나 아픈 유전자를 가졌기에 비둘기는 저토록 고통스러운 소리를 내는 걸까?

사랑방에서 수년간 질병으로 앓고 있는 상 어르신 가래 끓는 소리를 한다. 그러니 내가 얼마나 싫어하겠는가. 이집 저집 쫓겨 다니다가 오갈 때 없어서 우리 집에 온 것도 너무나 잘 안다. 가끔 꾸룩꾸룩 앓은 소리가 들려도 그저 밖에서 나는 소리겠지 하고 태무심했다. 우리 집에 난장판이 된 것도 모르고 아파트 앞뒤 동 실내기 위에 파란색 그물망을 쳐놓은 것을 보고 의아해했다. 그 의문이 오늘에서야 풀렸으니 그간 얼마나 무심했단 말인가.

성질이 온순하여 길들이기 쉽고 귀소성이 좋다고 하여 통신으로 이용했다는 비둘기. 성스러움, 순결, 안전, 평화 등 긍정적인 기의를 가지고 있는 비둘기가 현대인에게 부정적으로 다가오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배설물이 말라 공기 중에 떠다니는 병원균이 호흡기 질환을 일으키는가 하면, 비둘기의 빈대, 진드기, 벼룩, 조류인플루엔자 같은 전염병을 우리에게 전염시키는 매개체가 될 수 있으니 부정적으로 볼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어디 그뿐인가. 배설물은 도시 미관에도 좋지 않고, 건물이나 시설물을 부식시킨다고 하니 아무리 더불어 사는 세상이라고 하지만, 어찌하면 좋을까?

반대로 내게 긍정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산에서 만나는 납빛비둘기도 예쁘지만, 산책길에 청보랏빛 깃털을 단 집비둘기가 엉덩이를 뒤뚱거리며 앞장 서가는 모습이다. 가까이 다가가 깃털을 들여다보면 청색과 보라색 사이를 오가는 수만 개의 빛깔이 신비스러울 정도로 찬란히 빛난다. 좋은 쪽으로만 볼 수 있게 길이나 산에서 지내면 얼마나 좋을까?

창밖 실내기 위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 어디서 꾸룩꾸룩 앓는 소리가 난다. 효자손을 찾아 창가로 가 비둘기가 나타나기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아무것도 없는데 꾸룩거린다. 창문을 열어 확인하려는 찰나 실내기 밑 받침대에서 휑하고 날아간다. 그가 떠난 자리에는 물컹한 것이 떨어져 있다.

내가 불청객이라고 느끼는 비둘기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 몇 달째 러시아와 아프가니스탄이 전쟁 중이다. 전쟁터에 나간 아들 소식을 한없이 기다리는 전사의 어머니는 흰 비둘기가 물고 올 평화의 소식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전쟁과 투쟁은 고통이 따른다. 종교와 전쟁터에서 유래된 평화의 내면에는 붉은 울음이 담겨있다. 우리 속담에 `비둘기 마음은 콩밭에 있다'라고 했던가? 동서양이 주는 비둘기의 상징적 의미만큼이나 평화가 평화로 화해될 수 없는 그저 기의로 남지나 않을까 우려된다. 차라리 우리는 우리 방식대로 `비둘기 마음은 콩밭에 있다'라고 인식하고 살면 안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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