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바 방정식
품바 방정식
  • 이은일 수필가
  • 승인 2022.09.28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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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이은일 수필가
이은일 수필가

 

매일 산책하는 길에 용담공원이 있다. 요즘 그 공원이 있는 용담산을 깎아내리는 대규모 공사가 한창이다. 무극천 정비사업과 함께 용담공원을 새롭게 다시 조성하려는 모양이다. 공사장을 피해 각회리 쪽으로 돌아서 가다 보니 최귀동 할아버지의 동상과 지붕 골조가 드러난 빈집이 보인다. 최귀동 할아버지가 돌보던 18인의 걸인들과 같이 살았던 집인 것 같다.

벙거지 쓰고 망태기를 둘러멘 동상 옆으로 거지 성자 최귀동 할아버지에 관한 유래비가 있다. 긴 글 중에 `“남는 밥 좀 없어?” 없다면 가고 있다면 얻어다 동냥도 못하는 걸인들을 먹여주고'에 유독 눈길이 머문다. 순리대로 살아가는 각설이의 삶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그동안 들었어도 이해가 안 갔던 `얻어 먹을 수 있는 힘만 있어도 그것은 주님의 은총입니다'라는 말의 의미를 어렴풋이 알 듯도 하다.

이십여 년 전 처음 품바 축제장에 갔을 때 거지 움막 짓기 대회를 하고 있었다. 각 마을에서 움막을 하나씩 지어놓고 그 앞에서 품바 분장을 하고 각설이 흉내를 내면 심사를 거쳐 시상도 했는데, 그때는 거지가 뭐 자랑이라고 축제까지 하는 건지 의아하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축제는 그 후로 해마다 규모가 커지고 내용도 다양해져서 문화체육관광부가 선정하는 문화관광 유망축제가 되고, 6년 연속 충북도 최우수 축제로 선정될 정도로 발전해 이제 `음성품바축제'는 전국적으로 많은 사람이 찾아오는 유명 축제가 되었다. 물론 관계자들이 노력한 결과겠지만, 더불어 품바 안에는 특별한 뭔가가 들어있어 물질적 풍요로움 속에서 오히려 정신적 빈곤을 느끼는 현대인들의 빈 마음을 채워주기 때문은 아닐는지.

인생은 방정식 문제를 푸는 일과 같아 정해지지 않은 값에 이것저것을 대입해 보면서 정답에 가장 가까운 해답을 찾아 끊임없이 나아가는 과정일지 모른다. `삶의 애환이 담긴 풍자와 해학 × 숭고한 인류애와 박애 정신 = 사랑과 나눔의 실천'이라는 공식으로 그 방정식을 멋지게 풀어낸 사람이 바로 영원한 품바 최귀동 할아버지고, 그분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만든 축제가 바로 음성 품바 축제인 것이다.

품바는 주면 먹고 안 주면 굶는다. 순리대로 따르며 살 뿐 내일을 걱정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현실에 충실하다. 그냥 거지가 아니라, 배만 채우면 더 쌓으려 욕심부리지 않고 공짜로 얻어먹는 법 없이 걸판지게 한판 놀아줌으로 반드시 답례한다. 누더기를 입어도 당당하니 누구보다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 것이다.

품바 분장하고, 품바 옷을 입고, 모든 걸 다 내려놓고 신명 나게 각설이 타령 한 곡조 불러 젖히면 품바의 철학을 좀 알게 될까? 2판 4판 난장판 막춤 한 번 추고 나면 품바 인생을 이해할 수 있을까? 어쩌면 문제 풀기 전 해답 풀이 먼저 보듯 필요한 공식 정도는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공식을 안다고 다 정답을 써내는 건 아니다. 사람마다 풀어야 할 삶의 방정식이 다르고 또 사람마다 가지는 고유한 값도 다 다르므로 각자 직접 연필을 들고 하나하나 대입해 가며 풀어야만 진짜 답을 써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려면 자신이 가진 현재값을 파악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런 다음에야 무엇을 대입할지의 ?값 계산이 유효할 테니까.

작년에 왔던 각설이가 죽지도 않고 또 왔네, 매번 숙제처럼 다시 찾아오는 삶의 방정식을 풀기 위해 수시로 자신의 현재값을 돌아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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