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품격보다 국격 훼손이 문제
대통령 품격보다 국격 훼손이 문제
  • 권혁두 기자
  • 승인 2022.09.25 19: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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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권혁두 국장
권혁두 국장

 

윤석열 대통령이 우방국 순방 차 출국하기 전인 지난 15일 국가안보실은 “미국과 일본이 흔쾌히 정상회담에 응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정부 간 합의를 했다는 두 정상회담은 모두 불발 됐다. 한일 정상회담은 부랴부랴 그들이 오라는 장소를 찾아가 치른 30분간의 약식회담에 그쳤다. 이나마도 일본 정부는 회담이 아니라 `간담'이었다며 회동의 의미를 깍아내렸다. 한미 정상회담은 취소됐고 두 나라 대통령이 리셉션장 등에서 만나 스치듯 치른 세차례 스탠딩 환담이 전부였다. 일단 형식 면에서 낙제점을 면하기 어려울 것 같다.

만남의 방식과 시간이 아니라 내용을 주목해달라는 대통령실의 주문을 받아들여 속내를 살펴봐도 박수를 보낼만한 구체적 성과는 눈에 띄지 않는다. 이번 순방의 가장 큰 목표는 우리 반도체 산업에 불이익을 주는 미국 인플레 감축법의 조정이다.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이 인플레 감축법 집행 과정에서 우리 우려를 해소할 수 있도록 협력하자고 했고 바이든 대통령은 계속해서 협의를 이어나가자고 답했다”고 밝혔다. 백악관 발표는 애매했다. 백악관은 두 정상이 각종 현안에 대한 포괄적 협력방안을 논의했다고 밝혔을 뿐 인플레 감축법이나 한·미간 통화스와프 같은 우리 쪽에 절실한 현안에 대한 구체적 언급은 없었다.

저자세로 일관한 한일 정상회담은 내용도 형식만큼 초라했다. 대통령실은 “한·일간 여러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첫걸음을 뗐다는 데에 큰 의미가 있다”고 자평했지만 추진 과정에서 국민의 자존심에 생채기만 냈다. 양국이 정상회담에 합의했다는 우리 쪽 발표를 일본 정부는 즉각 부인했고, 회담 당사자인 기시다 총리 역시 막판까지 “정상회담 일정은 정해지지 않았다”며 선을 그었다. 한일 정상회담에 뜻이 없음을 누차 밝힌 셈이었지만, 우리는 기시다 총리가 참석한 행사장을 찾아가 그들이 굳이 `간담'에 불과했다고 우기는 빛바랜 회담을 강행했다.

일본 정부 관계자는 자국 언론을 통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징용 문제 등으로 정상회담은 시기상조이지만 관계 개선을 바라는 한국 정부의 자세를 받아들여 비공식 간담으로 대화에 응했다”. 한번 만나달라는 정성이 갸륵해 선심을 베풀었다는 소리로 들린다. 야당은 구걸 외교를 했다고 비판했다. 많은 국민은 안보와 경제를 위한 일본과의 관계 회복에는 공감하지만 오만과 무례를 감수하면서까지 정상회담에 목을 매는 저자세 외교에는 의문을 표하고있다.

기시다 총리는 들은 척도 하지않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는 언제 어디서든 만날 용의가 있다며 연일 연서를 날리고 있다. 우방인 한국 대통령의 체면은 한줌도 세워주지 않는 모진 태도와는 사뭇 다르다.

일본은 그나마 약식 회담이라도 베풀었지만 미국은 사전 합의된 정상회담을 일방 취소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무너진 국내 입지를 회복하려는 윤 대통령의 절박한 입장을 모를 리 없다. 그러나 그는 취임하자마자 중국의 눈총을 받아가며 미국 우선주의를 선언한 우방국 원수의 사정을 외면했다. 그것도 국내 일정을 핑계삼아 예정된 정상회담을 취소하는 전례없는 결례를 범하면서 말이다.

뉴욕의 한 행사장을 나오며 한 윤 대통령의 실언이 이번 순방외교에서 드러난 본질적 문제들을 덮어서는 안된다. 대통령 개인의 품격보다 국가의 품격이 훼손되지 않았는지부터 돌아봐야 한다는 얘기다. 정부의 외교 역량은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우방국의 홀대와 무례도 짚고 그 원인을 성찰해야 한다. 우리가 국제적으로 국력에 걸맞는 대접을 받고있는 지, 국격의 현주소를 냉철하게 곱씹을 때다. 윤석열 정부의 일방주의 외교를 숙고하는 계기도 돼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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