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 티켓 신드롬
황금 티켓 신드롬
  • 김금란 기자
  • 승인 2022.09.21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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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김금란 부국장
김금란 부국장

 

서럽다. 가진 게 없고, 배운 게 없어서 포기하는 인생을 살아야 한다는 사실이.

노력하는 자에게 복이 있다는 말도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살다 보면 노력은 없는 자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일 뿐이고 가진 게 없으니 고생은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보릿고개를 넘던 시절보다 먹고 살만한 요즘이 더 팍팍한 이유는 노력해도 세상의 벽을 넘을 수 없다는 현실 탓이다.

부모, 조부모 찬스 등 비빌 언덕이 있는 이들에겐 한없이 좋은 세상이, 없는 이들에겐 한없이 가혹하기만 하다.

꿈을 꿀 수 있는 유일한 도구인 교육이 계층 사다리로 전락하면서 이 땅에 수많은 청년은 대학 간판과 스펙 쌓기에 목숨을 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최근 발표한`2022 한국경제보고서'를 보면 한국에 대해 명문대·정규직에`올인'하는`황금 티켓 신드롬(golden ticket syndrome)이 만연해 있다고 비판했다. 그 결과 명문대에 대한 집착은 교육 제도를 왜곡시켰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눠진 노동구조는 청년 고용을 저하시켰다고 지적했다. 또한 한국은 치열한 학벌경쟁에 이어 높은 등록금과 주거비를 부담해야 하는 상황에서 낮은 고용률·경제활동 참가율로 청년의 미래 불확실성이 상존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대학 졸업장의 가치가 낮아진 가운데 처우 수준에 대한 기대치와 낙인효과 우려로 일정수준 이하 일자리 취업을 기피한다고도 비판했다. 대학 입시경쟁으로 인한 직업교육 관심 저하 등 중·고등학교의 직업교육 기능 약화도 지적하며 마이스터고등학교의 일·학습병행제 확대와 획일적 시험제도 비중 축소를 통해 재능·적성 계발을 위한 직업교육·진로상담 기능 개선을 권고했다. 수능 등 표준화 시험의 영향력을 축소하고 학생들에게 개인적인 관심과 재능을 키울 수 있는 기회 확대도 권장했다.

OECD의 보고서가 아니더라도 특성화고 학생들은 학벌주의 탓에 취업보다는 대학 진학을 선택한다. 학문을 연구해야 하는 대학은 정부의 대학구조개혁평가를 위해 순수학문을 없애고, 대학생들은 연구보다는 취업을 위해 스펙 쌓느라 캠퍼스 낭만을 포기하고 있다.

한국직업능력연구원이 발표한`직업계고 졸업 후 진로 동향 및 경기지표와의 관계'자료를 보면 직업계고 취업률은 정부의 취업 활성화 정책으로 2017년에 50%대까지 이르렀지만 2021년엔 20%대까지 하락했다.

반면 대학 진학률은 2017년 30.9%로 저점을 찍은 후 지속적으로 상승해 2021년 40%대까지 올랐다. 특히 눈에 띄는 점은 진로 미결정 비율이 2008년 8.5%에서 2020년 29.8%로 상승했다는 점이다.

대학들은 순수학문을 없애는 데 앞장선다.

더불어민주당 도종환 의원이 교육부에서 받은 일반대학(4년제) 학과(학부) 통폐합 현황 자료를 보면 최근 3년 새 700개 이상의 학과가 폐과 또는 통폐합된 것으로 나타났다. 단순 폐과만 무려 230건(32.9%)에 달했다. 특히 수도권 대학이 161건인 반면 지방대학은 77%인 539건으로 조사됐다. 대학생들은 대기업 취업을 위해 학과 공부보다는 어학, 자격증 취득을 위해 청춘을 보낸다.

빈센트 코엔 OECD 경제검토국 부국장 직무대행은 최근 정부세종청사에서 가진 브리핑에서 “한국은 OECD 어떤 회원국보다도 대학진학률이 높아`과잉교육'이란 말이 나올 정도”라며 “교육을 통해 얻는 스킬과 노동시장에서 기업이 필요로 하는 수요 간 불일치가 발생하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우리나라에서 명문대, 대기업, 정규직은 미래를 보장받는 황금티켓으로 통한다. 황금 티켓을 잡기 위해 청소년들은 대입에, 대학생들은 스펙에 올인한다. 정쟁만 벌이는 정치권에선 교육이 갈 길을 잃은 것이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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