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에 책임 묻는 신당역 참극
국가에 책임 묻는 신당역 참극
  • 권혁두 기자
  • 승인 2022.09.18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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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권혁두 국장
권혁두 국장

 

서울 지하철 신당역에서 발생한 여성 역무원 피살 사건은 스토커 범죄에 대해 다시금 국가에 책임을 묻게 한다. 그는 사전에 근무시간을 파악하고 흉기를 소지한 채 화장실에서 기다리던 스토커에게 희생됐다. 살인범은 무려 3년 동안 욕설과 협박이 담긴 전화·메일·문자 등으로 피해자를 고문한 것도 모자라 참혹한 방식으로 살인을 집행했다. 이 끔찍한 범죄는 세가지 이유를 들어 우리 사회를 질책한다.

첫째, 같은 범죄가 반복된다는 점이다. 서울에서 세 모녀가 가족을 따라다니던 스토커에게 살해당하고 경찰의 신변보호를 받던 여성이 스토커에게 희생된 게 근간의 일이다. 얼마 전에도 경기도 성남과 안산에 이어 경북 안동에서 여성 공무원이 스토커에게 살해됐다. 정부와 당국은 사건이 터질 때마다 재발 방지를 호언했지만 비극은 되풀이 되고 있다.

둘째, 사회를 비웃기라도 하듯 범죄가 늘어가고 잔혹해지고 있지만 수사·사법기관의 대응에 변화가 없다는 점이다. 이번 사건의 경우에도 경찰의 피해자 신변보호는 한 달만에 중단됐다. 피해자가 원치 않았다고 하지만 신변보호 연장이나 스마트워치 지급 등은 경찰 직권으로 가능했던 만큼 적극적인 대응에 실패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지난해 스토킹처벌법을 시행했지만 올해 8월 말까지 스토킹 혐의로 입건된 7152명 가운데 구속된 사람은 254명으로 4%에 불과하다. 이번 사건의 경우에도 지난해 10월 경찰이 가해자를 긴급체포해 영장을 신청했으나 법원은 기각했다. 올해 2월 2차 고소때는 아예 영장 신청을 하지도 않았다. 사법부와 경찰 모두 사안에 대한 위기의식이 없어 보인다.

셋째, 되풀이되는 참극을 면밀히 해부하고 처방을 해야할 정책 입안자들의 인식이 여전히 한가롭다는 점이다. 여성가족부 장관은 이번 살인사건을 “여성혐오 범죄로 보지 않는다”며 “남성과 여성의 이중 프레임으로 사건을 보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여가부 장관이 대부분 여성이 피해자이고, 여성을 인격체로 보지않는 그릇된 인성을 기반으로 해서, 사전 치밀한 계획에 의해, 반복적으로 자행되는 특수 유형의 범죄를 젠더범죄가 아니라 단순범죄일 뿐이라고 단언한 사회에서 구조적인 해법을 구할 수 있겠는가.

한 서울시의원은 이번 사건을 두고 “좋아하는데 안 받아주니 남자 직원이 폭력적 대응을 한 것 같다”고 말했다가 호된 비판을 받았다. 폭력을 동반한 일방적 집착은 연정으로 포장됐고, 그를 받아주지 않은 피해자는 원인 제공자가 돼버렸다.

사건이 터지자 법무부는 즉각 스토킹 범죄에 적용하던 `반의사불벌죄'를 폐지하기로 했다. 그동안에는 피해자가 연민이나 가해자 압박에 이끌려 공소를 포기할 경우 스토킹 범죄를 심판할 수 없었다. 피해 당사자 동의없이도 스토킹 범죄에 대해 공소를 제기할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진일보했지만 여전히 미흡하다.

무엇보다 가해자의 피해자 접근을 신속히 인지하고 대처할 수 있는 실효성 있는 대책에 주력해야 한다. 접근금지명령과 피해자 신변보호를 집행하는 와중에도 살인사건이 벌어지기 일쑤다. 이번 처럼 가해자가 금지명령을 무시하고 피해자에게 접근해 단시간 내에 범행할 경우 손쓸 방도가 없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정교한 가해자 감시장치의 도입이 절실하다. 전자발찌는 물론 미국 일부 지방정부처럼 스토킹 가해자에게 GPS 추적 장치를 부착해 피해자에게 일정 거리 이상 다가가면 경찰과 피해자에게 경보를 울려주는 시스템 도입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 이번에도 가해자 인권을 운운하다가는 주기적으로 어처구니 없는 비극을 접하고 입으로만 대책을 떠들다 물러나는 악순환을 피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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