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수사견(一水四見)
일수사견(一水四見)
  • 방석영 무심고전인문학회장
  • 승인 2022.09.18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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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방석영 무심고전인문학회장
방석영 무심고전인문학회장

 

불교의 여러 가르침 중에 일수사견이란 법문이 있다. 같은 물을 놓고 천계(天界)의 신(神)은 보배로 장식된 땅으로 보고, 인간은 물로 보고, 아귀는 피 고름으로 보고, 물고기는 보금자리로 본다는 것이 일수사견` 법문의 내용이다. 같은 물을 놓고도 각자의 업식에 따라 전혀 다르게 보며, 제각각의 견해를 주장-집착하는 가운데, 점점 자신만의 우물 속으로 추락하는 것을 경계하는 가르침이다. 이처럼 각자의 업식에 따라서 똑같은 물도 보배로 장식된 땅으로, 물로, 피고름으로, 보금자리로 제각각 다르게 보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하나의 대상을 놓고도 보는 사람의 업식에 따라 그 견해와 주장이 사뭇 다르다는 사실을 설파한 “시안견유시(豕眼見惟豕) 불안견유불(佛眼見惟佛)이란 가르침도 있다. 시안견유시 불안견유불은 조선을 건국하고 수도를 한양으로 옮긴 태조 이성계에게, 국사인 무학 대사가 설한 가르침으로, “돼지 눈에는 돼지가 보이고 부처 눈에는 부처가 보인다”는 의미다. 돈을 좋아하는 업식의 사람에게는 수표가 귀하게 보이지만, 뼈다귀를 좋아하는 업식을 소유한 개에게 수표는 먹지도 못하고 아무 짝에 쓸모가 없는 무관심의 대상일 뿐이다. 사람과 개 사이처럼,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도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어떤 인생의 목표를 설정했는가에 따라 살아가는 방식과 목표는 얼마든지 서로 다를 수 있다. 따라서 자신의 잣대를 고집하면서, 타인들을 평가하거나 지적하고 비난하는 일은 극히 조심해야 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는 오랜 세월 동안 쌓아 온 온갖 경험들에 대한 기억 뭉치인 업식이 서로 다르다는 점 외에도, 현재 각자 각자가 처한 상황에 따라서도 얼마든지 보는 시각이나 견해 및 주장과 중요도 등이 다를 수밖에 없다. 예를 든다면, 추운 남극을 횡단하는 상황에서는 시원한 한잔의 물보다는 따듯한 한점의 온기가 그리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무더위로 찌는 사막을 횡단하는 상황이라면, 따듯한 한점의 온기보다는 시원한 한잔의 물이 그립고, 귀하게 쓰이는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각자의 처한 상황을 배제한 채, 무조건 따듯한 온기가 소중하다느니, 시원한 한 잔의 물이 더 귀하다느니 하는 이분법적 견해와 주장을 피력하면서, 시시비비를 가리는데 소중한 힘을 낭비할 필요는 전혀 없다. 자신만이 옳고 상대방이 그르다는 것을 입증하려는 논쟁보다는, 상대방이 처한 상황이나 상대방의 성향을 잘 헤아려 이해함으로써, 소통의 물꼬를 트는 것이 급선무다.

단순히 상대를 이기기 위한 전략-전술적 측면에서도, 있는 그대로의 상대방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상대를 이기려는 욕심을 벗어나 진심으로 소통하기 위해선, 지피지기 외에도 역지사지 즉, 상대의 입장이 되어서 생각해 보는 여유롭고 따듯한 마음이 전제돼야 한다. 개가 멍멍 짖고 수표보다도 똥이나 쉰내 나는 뼈다귀를 좋아하는 것을 무조건 잘못이라고 보고, 개를 꾸짖거나 업신여긴다면, 그것은 개의 잘못이라기보다도 사람의 잘못이 더 크다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 된다. 우리는 언제나 상대 눈의 티끌보다, 내 눈의 들보를 빼내는 일을 중시하면서, 그 어떤 주의-주장에도 물들지 않은 갓난아기 같은 순수의식 내지 나 없음의 지공무사한 무아(無我)의 경지를 깨달아 증득해야 한다. 밝은 빛으로 세상을 다스리고 모든 사람을 유익케 함으로써, 다 함께 살기 좋은 `광명이세 홍익인간'의 지상낙원이 하루빨리 도래하기를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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