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일지 3
전원일지 3
  • 반영호 시인
  • 승인 2022.09.15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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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반영호 시인
반영호 시인

 

 참깨를 벼는 데 형님댁에서 전화가 왔다. 급히 집으로 오라는 전갈이다. 큰형님댁은 작은 고개 너머에 있다. 고개를 넘다 보면 장터 번던이 있다. 꽤 넓은 곳으로 평평한 데 옛 고관들께서 장을 치던 곳이란다. 지금은 잣나무가 빼곡히 들어섰는데 잣나무 특유의 송진내가 기분을 산뜻하게 한다. 매미가 죽어라고 울어대는 장터번던. 
‘땅이 꺼질 듯/산을 들어 올릴 듯/처절하게 외쳐대는 쓰름매미의 설음/맹세코 참아야지 거듭거듭 다짐하며/얼마나 오랜 세월을 기다리고 기다렸을까/내 언제/가슴 터지도록 오열한번 해볼거나, 너처럼/통곡해 울고 싶은 차에/누가 대신 뺨을 후려갈긴 듯//- 오열’
고개를 넘어서자마자 지금은 이장되어 갔지만 UN사무총장을 지낸 바 있는 반기문의 조부 묘가 있던 곳이 있다. 그 묘에서 30미터 거리에 형님택이다. 능모링이다.
능모링이란 동네가 생긴 이래 대형 버스가 들어와 보긴 처음이었다. 진입로의 폭이 좁고 급커브가 많아 엄두도 못 냈거니와 대형차가 들어올 만한 이유가 없었다. 이런 중에 떡 하니 큰 버스가 들어왔으니 동네 사람들이 좇아 나와 보지 않을 수 없다. 알아본즉슨 뒷동산에 있는 반기문 UN사무총장의 조부 산소를 보러왔단다. 말로는 지리학을 연구하는 사람들로 지질탐사를 나왔느니 어쩌니 했지만 사실은 풍수지리와 수맥을 보는 사람들이었다.
유년시절 묘지는 우리의 유일한 놀이터였다. 양지여서 햇볕이 좋았고 아늑하였으며 잡초 하나 없이 깨끗한 잔디밭은 동네 아이들이 모여 놀기에 더없이 좋은 명당이었다. 동네에 그 묘지만큼 큰 마당도 없던 때라 모이기만 하면 그곳으로 갔고, 어찌나 빠대고 놀았는지 묘지는 반들반들하여 금초를 하지 않아도 될 정도였는데, 아이들의 억척스런 등살에도 추운 겨울이 지나가고 잔디가 파릇파릇 돋아나면 할미꽃은 봄마다 예쁘게 피어났다. 
하기야 어르신네 머리 위에서 고개를 발딱 재끼고 서 있을 수는 없겠지만 다소곳이 고개 숙인 모습이 볼수록 얌전한데 입술엔 빨갛다 못해 검붉은 루즈를 찐하게도 발랐다. 역설적이다. 아무튼 할미꽃은 되바라진 꽃은 아닌 건 분명하면서도 자가당착(自家撞着)한 모순의 이면이 있다. 모양새도 패러독스 하거니와 뿌리가 얼마나 독한지 재래식 뒷간에 구더기 구제용 특효약이기도 하다.
어릴 적 우리가 뛰놀던 그 산소다. 사람들이 찾아오는 태조산은 사두혈(巳頭血)이며 左靑龍 右白虎가 뚜렷하고 그 갓으로 외청룡 외백호까지 완벽하며, 산소 앞으로 내다보이는 안산과 멀리 조산(朝山)으로 삼신산이 조화를 이루어 기가 막히게 좋은 지형을 갖춘 자리란다. 토질이 마사토가 섞인 사질양토로써 뽀송뽀송하고 수맥이 전혀 흐르지 않는 가히 명당자리란다. 이런 보기 드문 터에 그 후손의 운이 닿았으니 큰 인물이 탄생하였다는 것이다.
본시 명당이란 여자의 음부와 같다 하였다. 외형적으로는 다리며 둔덕, 숲을 이룬 산세가 그러하거니와 사람이 태어난 곳이므로 다시 죽음을 당하여 돌아가는 곳 또한 본래의 그곳이라는 의미다. 땅에서 태어나 땅으로 돌아가는 사람은 끊임없이 태어나고 회귀하는 윤회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는 생의 시원(始原)이다. 연어가 처음 알에서 부화되어 넓은 바다로 나갔다가 죽을 때가 되면 강을 따라 올라와 태어난 곳으로 회귀한다거나, 여우가 죽을 때는 머리를 고향으로 둔다는 의미와 같은 맥락이다. 
몇 해 전, 우리들의 놀이터였던 그 산소가 이장되어 갔다. 가족묘를 조성했다는 것이다. 묘는 없어졌어도 묘를 보러오는 관광버스는 끊이지 않고 여전하다. 하나같이 하는 말들이 ‘이 좋은 터를 버리고 이장을 했다니…’하며 혀를 찬다. 마치 이곳에 묘를 썼기 때문에 외무부장관이 되었고 세계의 대통령이란 UN사무총장까지 오를 수 있었다고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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